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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들/여적

[여적] ‘노 보트 노 키스’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코미디 작가 겸 감독 지망생 미셀 콜린스라는 23세 여성이 인터넷에 ‘보터가즘(Votergasm)’ 사이트를 만들었다. 투표자와 오르가슴의 합성어다. 콜린스는 사이트의 슬로건을 ‘No Vote, No Sex’로 내걸었다. 투표하지 않은 애인과는 섹스를 거부하자는 뜻이다. 
캠페인은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머그잔·냉장고 자석은 인기 상품이 됐다. 이들은 투표 안한 사람과 1주일간 섹스를 거부하면 ‘시민’, 투표한 사람과 섹스하면 ‘애국자’로 구분했다고 한다. 캠페인은 특정 정당 지지를 표방하지 않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기 위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보수파 방송인인 러시 림보는 TV쇼에서 “(민주당에) 투표하면 섹스해준다는 매춘부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이들은 “러시 림보 얼굴을 담은 쪼리(발가락 샌들)를 신고 다니겠다”고 대응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유머러스하고 발랄한 캠페인”이라고 평가했다. 그 덕분인지 투표율은 60.7%로 1968년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인들의 ‘잠자리 협박’ 원조는 콜린스가 아니다. 진짜 원조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싸웠던 펠레폰네소스 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테네의 똑똑한 여인 리시스트라타는 광장에 여성들을 모아놓고 “전쟁을 그만두지 않으면 섹스를 거부하겠다”고 남편들을 위협하자고 했다. 전쟁은 오래지 않아 끝났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한 ‘No Vote, No Kiss’ 캠페인이 한창이라고 한다. 정치나 현실을 뒤에서 투덜대고만 있을 게 아니라 암담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후보를 찾아 찍자는 투표 독려 운동이다. 맞는 말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은 33.9%, 30대는 41.3%였다. 2008년 총선 때는 20대 31.2%, 30대 36.1%로 50~60대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이번 선거 유권자 중 20~30대(19세 포함)는 전체의 40.9%를 차지하고 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주력 세력이다. 선거 이후 등록금과 일자리, 무상급식, 보육시설 등 지방 살림과 교육 정책에서 가장 많은 혜택이나 불이익을 받을 계층이기도 하다. 결국 선거는 자신의 집안일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투표하지 않는 자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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