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편집장의 눈

[박래용칼럼]‘빽도 총리’와 ‘관심 대통령’

국정에도 ‘빽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경질한 총리를 다시 불러 유임시킨 깜짝쇼를 보고서다. 입 달린 사람은 다 한마디씩 한다. 나라가 윷놀이판이냐. 재수 삼수를 해도 안되면 고등학교를 다시 다닐 거냐. 이것이 바로 ‘창조 국정’. 사퇴 후에도 국정을 책임지는 진정한 책임총리 나셨다….

대통령은 이제 조롱의 대상이 됐다. 별에서 온 대통령이란 말까지 나온다. 지지층에서도 고개를 젓는 사람이 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은 42%로 주저앉았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 통치 불능 상태인 ‘레임덕’에 빠진 것으로 본다. 서울에선 40%조차 무너져 37%였다.

‘빽도 총리’ 해프닝에 묻어 나온 몇 가지 부산물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모호했던 여러 가지 불투명성이 말끔히 걷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애초부터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걷어찬 것은 그중 일례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 책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인적쇄신도 깨졌다. ‘눈물의 대국민 담화’를 보고 심판을 유보했던 국민들은 집단 네다바이를 당한 꼴이 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6얼 30일


사실 대통령의 위약은 대선 때의 약속을 줄줄이 파기할 때 짐작됐던 일이다.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탕평 인사를 하고 여야 지도자 연석회의를 열겠다는 약속은 야당을 똥 친 막대기 취급할 때 이미 뻥이었음이 확인됐다. 후보 때는 전태일상(像)이다, 장준하 유족이다 뻔질나게 찾아 아버지의 과거사에 고개를 숙였지만 당선 후엔 입도 뻥긋한 적이 없다.

우리 사회 보수 엘리트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점은 망외(望外)의 성과다. ‘출퇴근 개그’란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문창극은 더 얘기할 것도 없다. 교육계 수장으로 낙점된 어느 교수는 장관이 아니라 ‘적폐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샘플용인 것 같다. 국정원장 후보자는 ‘차떼기 돈’ 배달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정치공작에도 연루된 인물이다.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는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를 하는 내내 서울의 대학에서 석·박사 대학원을 다녔다. 인사권자는 그를 통해 이 나라는 일반전초(GOP)에서 빡빡 기는 군인이 따로 있고, 강의실에서 하품하는 군인이 따로 있다는 신분 차이를 알려줬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야당 인사들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 글을 달았던 게 유일한 문화 관련 경력이다.

이것이 세월호 참사를 겪고, 6·4 지방선거 민심을 반영했다는 박근혜 정부의 쇄신 인사다. 고르고 골라 이런 불량감자들만 모은 것도 비상한 재주다. ‘이 자리에 이 사람은 안된다’고 정리해놓은 부적격자 명단(블랙 리스트)을 잘못 가져와서 발표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리 보니 대통령의 잦은 ‘인사 참사’도 실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이러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여당의 사무총장은 낙마가 이어지자 “국회 인사청문위원들을 검증하자”고 야당에 삿대질을 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지만 정치를 잘못 배웠다. 이들이 당과 정부에 포진해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나설 것이니 그 결과가 두렵다.

박 대통령은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높아진 검증 기준이 아니라 낮아진 인물 수준이 문제다. 최경환은 후보 비서실장, 정성근은 대선캠프 공보위원, 정종섭은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 부위원장 출신이다. 수첩 인사가 바닥났다뿐이지, 수첩 바깥에 왜 인물이 없겠는가. 공의휴는 재상에 취임하자 자기 밭의 아욱을 다 뽑고, 부인의 베틀을 불살랐다. “채소 장수와 베 짜는 여자는 뭘 먹고 사느냐”는 이유에서다. 정자 형제는 흉년이 들면 흰쌀밥을 먹지 않았다. 내 편에서만 찾으려 하니 눈을 씻고 봐도 이런 사람이 없는 것이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국민이 깨우쳐줘야 한다. 1년 반 동안 종북몰이와 이념전쟁을 통한 보수와 진보 갈라치기로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봐왔다. 2기 내각 면면을 보면 남은 임기도 기대 난망이다.

문과즉희(聞過則喜). 누가 내 허물을 지적해주면 기뻐한다는 뜻이다. 우 임금은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했고, 순 임금은 남의 의견에 따라 좋은 일을 하게 되면 춤을 추고 즐거워했다. 우리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직언을 하는 참모도 없다. 그러고는 일만 벌어지면 여론 탓, 제도 탓, 국민 탓이다. 군에는 ‘관심 병사’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나라에 ‘관심 대통령’을 두게 된 것 같다.



박래용 정치에디터

'편집장의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6등급 정치  (0) 2014.09.10
정치권의 가혹행위  (0) 2014.08.07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  (0) 2014.05.21
'화무십일홍'  (0) 2012.01.17
형님의 말로  (0) 201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