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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칼럼

1980-2017 시그널

2017년 5월 9일자 30면 게재

 

TV드라마 <시그널>은 30년 전 과거와 현재의 경찰이 무전으로 연결된다. 과거의 경찰이 미궁에 빠지면 현재의 경찰이 단서를 줘 미제 사건들을 파헤친다. 1980년 5월 광주엔 전두환 신군부의 총칼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과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과 2017년 시민 사이 무전 교신을 상상해봤다. 출연 배우의 이름을 빌려 과거는 조진웅, 현재는 이제훈이라 한다.

 

tvN 드라마 '시그널'에 출연한 배우 조진웅, 이제훈

 

조진웅 = “거긴 37년 후라고요? 지금 대통령은 누굽니까?”

이제훈 = “마침 오늘이 새 대통령을 뽑는 날입니다.”

조 = “아, 드디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습니까? 우리 꿈이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 보자는 거였는데, 그런 민주주의 한 번 해보자는 거였는데…. 결국 그런 세상이 왔구먼요. 바로 직전의 대통령은 누구였습니까?”

 

이 = “박정희의 딸 박근혜였습니다.”

조 =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을 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이 =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도 속은 거죠. 하지만 결국 시민들에 의해 탄핵돼 끌려 내려왔습니다.”

조 = “탄핵이라고요, 탄핵이 뭡니까?”

이 = “음, 이승만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4·19혁명처럼 불의와 부정에 맞선 시민혁명이 또 한번 일어났지요. 이승만은 망명했지만, 박근혜는 교도소로 갔습니다. 시민들이 대통령을 파면시켰습니다.” 

조 =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군요?”

이 = “아무도 다치지도, 죽지도 않았습니다. 수백만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켜고 ‘박근혜 아웃’을 외쳤을 뿐입니다. 박근혜는 저항했지만 결국 쫓겨났습니다.”

조 = “믿어지지 않는군요. 새 대통령 후보로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까?”

이 = “후보는 누구라고 해도 잘 모르실 테고…37년 전 기준으로 하면 신민당과 민정당에서 후보를 냈고, 새로운 당에서 몇 명 더 나왔습니다.”

 

조 = “아니,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이 그때까지 있단 말이오?”

이 = “간판은 여러 번 바꿨지만 뿌리는 계속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조 = “어떻게 민정당이 30년이 넘도록 살아 남을 수 있죠?”

이 = “전두환 같은 수구세력이 독재와 민주 프레임을 민주화 이후엔 보수와 진보 대결로 바꿔 살아 남았습니다. 선거 때마다 ‘야당은 빨갱이’라 하면 만병통치약이었죠. 북한 없었으면 선거 어떻게 치렀겠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그나마 지금 보수에게선 헌신과 희생, 책임이라는 보수의 가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짜 보수인 거죠.”

조 = “거 참, 북한은 어떻게 됐나요? 남북은 통일이 됐습니까?”

 

이 = “아직…. 북한은 김일성에서 지금은 그 손자가 3대째 집권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독재정권과 남한의 보수정권은 적대적 공생관계로 서로 명을 유지해왔습니다. 북에서 망명해 온 고위 인사는 ‘북한은 미쳤고, 남한은 썩었다’고 했습니다.”

조 = “하, 그럴 수가…그래도 2017년은 좋은 세상이 됐겠죠?”

이 = “총칼은 사라졌지만 편가르기는 심해졌고, 경제는 커졌지만 없는 사람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돈 있고 ‘빽’ 있는 2%만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조 = “우린 대통령 한번 직접 뽑아보자고 싸우다 죽었는데…댁들은 그동안 뭘 했소?”

이 =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재벌, 국회의원, 검찰, 언론은 보통 사람 머리 위에 그들만의 성을 쌓았습니다. 위기 때는 똘똘 뭉쳐 절대 무너지지 않았죠. 한두 명 대통령이 개혁을 시도해봤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조 = “대통령도 탄핵했다면서 개혁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이 = “친일파를 청산하려 할 때도 ‘이 사람들이 없으면 일은 누가 하냐’고 좌절시키지 않았습니까. 기득권은 항상 ‘지금 이대로’를 외칩니다. 적폐청산이란 말은 무슨 범죄와의 전쟁이나 깡패를 소탕하겠다는 선언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공포심이 드는 거죠. 이번에도 적폐청산이 웬말이냐, 통합이 먼저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조 = “이런 쳐 죽일 놈들…그래, 앞으론 좀 나아질 것 같습니까?”

이 = “느리지만 꾸불꾸불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민이 주인이고 권력인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달라져야죠.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가상 교신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방송 인터뷰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힙니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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