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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칼럼

“청와대의 그립이 너무 세다”

민심이 심상치 않다. 현 정부 들어 가장 강한 부정적 기류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를 교체해 2기 경제팀이 꾸려졌는데도 지지율 하락이 멈추지 않는다. 개각은 시장과 시민들의 불안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는 김수현 정책실장 기용에 난색을 표했다. 김 실장은 과거 그가 데리고 일했던 직속 부하였다. 그런 인연의 사람을 ‘노’라고 한 건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교수에게 물어봤다.

 

- 안된다는 진짜 이유가 뭔가.

“정책실장은 경제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는 경제가 전공이 아니다.”

 

- 함께 일해보니 영 아니올시다였던 건가.

“그건 아니다. 일은 잘하는 사람이다.”

 

- 주변의 고언에도 임명을 강행했는데.

“좀 아쉽다.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뉴질랜드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현지시간)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내 코디스호텔에서 저신다 아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한반도 평화, 적폐청산, 민생살리기,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바라는 시민들의 간절함이 모아진 것이었다. 그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남북관계의 해빙무드가 받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상승폭을 다 까먹었다. 50% 아래로 추락한 지지율은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층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젊은 세대들도 “문 대통령에 실망했다”고 한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과연 국정운영 능력이 있는 정부인지, 촛불 덕분에 엉겁결에 정권을 잡은 정부인지를 묻고 있다.

 

국정은 당과 정부와 청와대 3자가 조율해가며 운영한다. 여당이 민심을 들어 정책의 큰 줄기를 잡으면, 청와대가 당과 정부 입장을 조정하고, 정부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시민과 시장의 여론을 듣는 것은 당·정·청 모두가 할 일이다. 그러나 여당과 정부의 자율성은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새로운 길을 내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민주당으로 온 한 의원의 얘기다.

 

“민주당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운동권적 태도다. 많은 부분에서 투쟁적·저항적 태도를 취한다. 저항의 정치라고나 할까. 여당이면 설득의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는 반대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한다.”

 

선거에서 이기고 집권에 성공한 정당은 많았다. 그러나 늘 거기까지였다. 시민의 에너지를 정치에 결집해 국정혁신으로 연결해야 했지만 민주당은 그러지 못했다. 협치도, 개혁연대도 이뤄내지 못했다. 취약한 당 지지율은 대통령 지지율 급락과 함께 대선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대통령 지지율에만 의존하는 정치는 위험하다. 춘향이의 인기가 떨어지면 향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각은 청와대를 따라가기 급급한 모습이다. 시민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인다는 재계와 보수세력의 주장에 대해 장관으로부터 설득력 있는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고, 그렇지 않다면 경제 사정에 맞춰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충고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내각은 둘 다 하지 않았다. 정책 전환이 설명 없이 이뤄지면 정부는 시민이 아니라 통치자의 것이 되고 만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시민들이 정부를 불안해하는 것이야말로 경제 위축의 근원 중에 근원”이라고 했다.

 

문제의 핵심은 청와대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의 그립(grip·움켜 쥠)이 너무 세다”고 했다. 지지율이 높으니까 청와대에 힘이 모이고, 청와대의 장악력이 커지니까 부처는 먼저 움직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지금 장관들은 청와대 수석의 정책보좌관”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특별감찰반원들의 일탈도 “(청와대 직원들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간 때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발언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물은 들어오지 않았다. 마른땅에 노를 들고 들어가는 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보인다.

 

국정운영에 등 돌리는 사람이 많다면 반성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청와대 정부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여론을 직접 이끌고자 한 것, 청와대가 권력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모두 패착이라고 했다. 사회적 동의의 기반을 넓히지 않으면 큰 개혁은 어렵다. 시민들의 소망은 경제가 살아나고 나라에 활력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실력과 겸손이다. 청와대는 국정의 구심력을 확고하게 만들되, 내각과 당에 힘을 실어 자발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는 유능하고 겸손한 국정운영을 했는지 되돌아볼 때가 됐다. 시민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는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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