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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칼럼

요셉과 황교안의 차이

유대인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를 받고 우쭐대다 형들의 질투를 사서 마른 우물에 버려졌다. 노예상인의 손에 넘어가 이집트 고관의 종이 되었다.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옥중에서 왕(파라오)의 꿈을 해몽해 신임을 얻었다. 파라오는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할 만큼 무한신뢰를 보냈다. 그는 이집트 재상(宰相) 자리에 올랐다. 오만했던 요셉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 성공한 상징이 됐다.

 

황교안은 총리 퇴임 후 교회 집회에서 자신을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에 빗댔다. 그는 ‘요셉 총리’란 별명을 얻었다. 요셉은 재상에 머물렀지만, 황교안은 총리 이후 대권을 꿈꾸고 있다. 지난 2월 황교안이 제1야당 대표로 뽑혔을 때 지지층은 그가 지리멸렬한 보수세력을 재건해주기를 바랐다. 황교안은 빠르게 당을 장악했고, 보수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런 황교안의 상승세가 4개월 만에 꺾이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이유는 세 가지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들어서며 대화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첫째, 과도한 이념공세에 대한 역풍이다. 그동안 황교안과 측근들은 국회를 멈춰 세우고 장외투쟁에 전력했다. 그건 원외대표, 정치신인 황교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게 해 존재감을 키우려는 전략이었다. 황교안은 장외투쟁에서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자’ ‘폭탄 정권’이라고 공격했다. 탄핵당한 박근혜 청와대, 총리실 사람들은 황교안 곁으로 다시 모여 문재인 정부를 조롱하고 모욕하고 저주했다. 그건 분풀이 같았다. 황교안은 그들을 말리지 않고 되레 옹호했다. 반문재인, 반정부 프레임이 보수언론→보수정당→보수언론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사이클도 다시 작동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때리면 무너지더라는 공격법 그대로였다.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과 반대를 하더라도 잘한 건 잘했다고 하고, 지원할 건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한국당은 닥치고 공격만 했다. 엊그제 여론조사에서 시민 65%는 “한국당이 싫다”고 답했다(한국갤럽). 23%가 한국당에 ‘호감’을 표시했는데, 홍준표 대선 득표율(24%)과 같았다.

 

둘째, 정책에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황교안은 중소기업이 겪는 청년 구인난의 해법으로 “멋진 사내 카페를 만들면 (청년들이) 갈 것”이라고 했다. 임대아파트 간담회에선 신도시 정책으로 집값이 떨어지고 세금폭탄을 맞게 됐다고 해 세금폭탄 한번 맞아보는 게 소원인 세입자들의 염장을 질렀다. 아들 스펙,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등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그는 “뭐가 문제냐”고 했다. 이념공세에서 정책으로 전환되자 황교안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현안에 무지하다는 인상을 줬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무장관·총리 시절엔 남이 써준 원고만 읽었던 것 아닌가, 실수가 아니라 진짜 실력 아닌가, 제2의 박근혜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셋째, 보수정당의 비전과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민들은 황교안이 뼈를 깎는 혁신과 참신한 인재영입으로 꼴통보수에 웰빙 체질인 한국당을 탈바꿈시켜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보수개혁의 새로운 길을 찾고,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고, 냉전수구의 울타리를 넘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대신 서청원·김문수 등 올드맨을 찾아다녔다. 탄핵에 동참한 바른미래당도 안고, 탄핵에 반대한 태극기당도 함께하자는 것인데 그건 마치 물냉면도 먹고, 비빔냉면도 먹겠다는 식탐처럼 보였다.

 

그 결과 부지런히 장외투쟁한 황교안은 아무런 정치행보도 하지 않은 이낙연에게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뒤처졌다. 그렇다면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워야 할 터인데, 그는 “언론이 좌파에 장악됐다”며 언론 탓을 하고, 언론과의 접촉을 줄였다. 제1야당 대표가 입을 닫는 것으로 살길을 찾고 있다.

 

황교안의 추락과 함께 한국당도 지지율 20%대 박스권에 갇힌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당의 지지율이 오르면 당에 기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 각자도생한다. 그게 정치 생존법이다. “한국당에는 투톱 정치밖에 보이지 않는다”(장제원),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는 정치 아이큐로는 국민의 감동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정갑윤)는 비판이 공개적으로 나온 건 심상치 않다. ‘황교안 리스크’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당에선 “가을까지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황교안체제가 흔들리고 비상대책위 얘기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공공연하다.

 

가을이 머지않았다. 지난 3년간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에서 내리 3연패한 한국당에 내년 총선은 존폐의 마지막 기로다. 황교안과 한국당이 반등할 길은 자기반성과 변화, 혁신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요셉은 달라졌지만, 황교안은 바뀌지 않고 있다. 그게 요셉과 황교안의 차이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