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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들/기자메모

[기자메모] 친여보수언론의 색깔론, 저널리즘 위기 자초한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촛불 재판과 관련해 담당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이 사태를 위중하다고 보는 것은 법치의 근간인 사법부의 신뢰를 뿌리부터 흔드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법관의 양심과 독립은 헌법 사항이다. 곧 신 대법관의 행태는 헌법 위배 행위인 것이다. 

우려했던 대로 취재를 할수록 감춰진 진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나오고 있다. 재판 개입과 압력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다양하게 이뤄졌다는 것이 우리의 취재 결과다. 신 대법관은 시국사건을 맡은 담당 판사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선고 연기를 주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8일에는 위헌제청신청을 기각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또 밝혀졌다. 자고 나면 새로운 사실이 터져나오니 내일은 또 뭐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여권과 일부 친여 보수언론의 태도다. 한 언론은 “좌파 신문이 조직적으로 사법부 공격에 나서고 있다”면서 일련의 촛불 재판 개입 보도를 사법부 파괴공작이라고 했다.

새삼 언론학개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제1 원칙이다. 여기에 좌나 우,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현직 법원장의 재판 간섭 의혹을 쫓고 이를 보도하는 것은 저널리스트로서 당연한 책무이다.
경향신문은 집시법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인 박재영 판사가 돌연 사직한 이후 법원 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추적해왔다.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거의 매일 전화했고, 알 만한 변호사들을 밤낮없이 찾아다녔다. 그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모은 취재보고서만 책상 위에 한 다발이 넘는다.
어떤 판사는 입을 열듯 말듯 주저해 부인을 찾아가 설득을 당부하기도 했다. 신 대법관이 e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게 된 뒤 메일 전문을 입수하기까지는 꼬박 9일간의 진통이 있었다. 

친여 보수언론은 법원내 좌파성향의 판사들이 내부 일을 조직적으로 폭로하거나 일부 언론과 편을 짜 인민재판식으로 몰매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가만히 참고 넘기기엔 도가 좀 지나치다.

용산 철거민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친여 보수언론은 좌우 색깔론을 덧칠하며 본질을 비틀고 폄훼했다. 이들 언론에 편승해 “진보언론도 편파적이고 보수언론도 편파적”이라는 일부 언론학자들의 양비론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기사를 축소하든 외면하든 이는 해당 언론의 고유 판단이지 누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과 숨겨진 진실을 찾아 분투하는 동료 기자들의 노력을 좌파 운운하며 매도하고 조롱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대의 언론으로서 분노를 넘어 그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