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TV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인간의 두 얼굴>이란 제목이다. 제작진은 6명의 대학생들을 모아 오답을 말하도록 미리 짰다. 7번째 학생을 속이기 위해서다. 이들을 실험실에 빙 둘러 앉혀놓고 문제를 냈다. 왼쪽에 선을 하나 그려놓고 오른쪽에 3개의 선을 그려 놓았다.
질문은 간단했다. “왼쪽 선과 길이가 같은 것은?” 바보가 아닌 바에야 누구나 알아맞힐 수 있었다. 그러나 미리 짠 6명은 똑같이 틀린 답을 댔다. 첫번째, 두번째 오답이 이어지는 동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7번째 학생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질문은 간단했다. “왼쪽 선과 길이가 같은 것은?” 바보가 아닌 바에야 누구나 알아맞힐 수 있었다. 그러나 미리 짠 6명은 똑같이 틀린 답을 댔다. 첫번째, 두번째 오답이 이어지는 동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7번째 학생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7번째 학생도 똑같이 오답을 댔다. 처음 한 두 문제는 소신껏 정답을 얘기한 학생도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를 빤히 쳐다보자 다음 문제부터는 굴복했다. 실험이 끝난 뒤 이유를 물었다. “나만 비정상으로 비치는 게 싫었다” “많은 쪽에 묻어 가는 게 편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천안함 의문 제기하면 좌파세력?
이는 1951년 발표된 미국 사회심리학자 애시의 ‘동조 실험’을 재현한 것이다. 애시의 실험에서 진짜 학생의 오답률은 36.8%였다. 압도적 다수가 지지하면 아무리 불합리하게 보이더라도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게 망설여진다는 가설을 애시는 실험에서 입증해보였다. 애시는 그런 다수의 의견을 ‘집단 압력’이라고 하고, 내키지 않지만 묵묵히 따라가는 것을 ‘비자발적 동조’라고 불렀다.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의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뢰를 잃은 군에 조사를 맡겨놓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기가 막힌 것은 단 하나의 의문도, 이견도 용납하지 않는 친여 보수세력의 협량한 태도다. “(군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다”란 말까지 나왔다. 국민을 일렬종대로 세워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기세다. 이들은 의문을 제기하는 누구든 좌파·친북·종북세력으로 빨간 색칠을 하고 있다. 애시도 놀라 자빠질 집단 압력이다.
기가 막힌 것은 단 하나의 의문도, 이견도 용납하지 않는 친여 보수세력의 협량한 태도다. “(군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다”란 말까지 나왔다. 국민을 일렬종대로 세워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기세다. 이들은 의문을 제기하는 누구든 좌파·친북·종북세력으로 빨간 색칠을 하고 있다. 애시도 놀라 자빠질 집단 압력이다.
보수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의 '천안함 사태' 의문 서한 발송에 대해 반국가단체 행위로 검찰에 고발하고 있다.
역사에 집단 압력의 사례는 많다. 1964년 미군 구축함이 월맹군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다는 ‘통킹만 사건’은 희대의 조작극이었지만 7년 뒤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폭로할 때까지 진실은 묻혔다.
9·11 이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파괴” 명분으로 이라크를 공격했지만 아직까지 어디서도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나치에 독재의 길을 열어준 1933년 독일의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일본의 대(對)중국 본토 침략의 도화선이 된 1936년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은 파렴치한 자작극의 대명사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안보 구멍’에 사죄도 책임도 없어
천안함이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2010년 지금, 이곳 대한민국에서 어떤 합리적 의심이든, 과학적 반박이든 몰매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단 편향성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거나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기 십상이다. 실수를 알고 난 뒤엔 이미 늦다. 그래서 이견은 개인의 권리 보호뿐 아니라 국가적 실수를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6명이 한목소리를 내면 다른 1명도 끽 소리 없이 따라야 한다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집단 편향성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거나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기 십상이다. 실수를 알고 난 뒤엔 이미 늦다. 그래서 이견은 개인의 권리 보호뿐 아니라 국가적 실수를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6명이 한목소리를 내면 다른 1명도 끽 소리 없이 따라야 한다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사회에서 보수여론의 독과점에 맞서는 것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보수는 위쪽에서, 진보는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지만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는 것이다.
‘뻥 축구’는 매일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천안함 사건을 두고 정부와 여당은 안보 구멍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전 정권 책임으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헌법에 손을 얹고 “국가를 보위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은 사죄도 책임도 언급한 적이 없다. 여당 대표는 지방에 가서 “바로 여기 모인 시민들을 공격한 것”이라며 겁을 주고, “제2의 천안함을 막으려면 한나라당이 압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멍 뚫린 정권에 표를 줘야 구멍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결자해지를 얘기하는 것인지, 후안무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러니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 노 전 대통령 1주기에 맞춰 발표된 ‘채팅 여간첩’과 전교조 교사 무더기 파면·해임 조치는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국민을 상대로 공안 버라이어티쇼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당장 바로 세울 수는 없다. 방법은 있다. 관중의 눈이 똑바르면 된다. 국민이 호루라기를 든 심판을 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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