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정동탑

[정동탑] “法·檢 더 싸우라”

박래용 2006. 11. 20. 10:15
병석에 누워 오늘 내일하고 있는 중환자가 있었다. 때마침 빚쟁이가 찾아와 죽기 전에 빚을 갚아줄 것을 채근하는데 환자가 그만 꼴까닥 숨지고 말았다. 유족들은 가뜩이나 힘든 환자를 절명케 했다고 이 빚쟁이를 고소했는데…. 고려때 있었던 실제 사례다. 그때는 고을 현령이 기소와 재판권을 다 쥐고 있던 시기. 현령의 판결이 나왔다.

‘병엽무풍자락(病葉無風自落).’

병든 나뭇잎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죽을 때가 됐으니 죽었지, 옆에서 누가 뭐라 한 건 범죄 사실이 안된다는 것이다. 무죄다. 유족은 재심을 청구했다.

‘후삭인지위절(朽索引之爲絶).’

썩은 새끼줄도 잡아 끄는 놈이 있어야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번엔 유죄. 이쯤 되면 엿장수 맘대로다. 조계종 전 종정 월하(月下)스님이 들려준 얘기다. 스님은 법은 운용하는 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법원이 ‘병든 나뭇잎’을 내세우면 검찰은 ‘새끼줄을 잡아 끈 놈’의 객관적 증거를 입증해 유죄를 다툰다. 법리논쟁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관계자들의 구속영장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간 다툼도 법리나 소명 등을 놓고 ‘로 게임(law game)’으로 마무리됐다면 오히려 평가받았을 뻔했다.

실제는 어떠했나. 양 기관간 갈등은 벌써 세 달째 계속되고 있다. 그간 오고간 공방은 다시 옮기고 싶지 않을 정도다. 양상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지켜보는 국민을 조금이라도 안중에 뒀다면 이럴 수는 없다. 검찰이 희망하는 ‘영장항고제’나 법원이 요청한 ‘조건부석방제도’ 같은 제도개혁은 법원과 검찰이 동의해 국회에 낸 형소법 개정안에 다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양 기관이 힘싸움만 하며 으르렁거릴 게 아니라 국회에 조기 처리를 요구하는 게 옳았다. 그러고도 미진한 게 있다면 앞으로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나 해결책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지금 검찰이 앙앙불락하는 론스타 관련 모모씨의 영장기각 문제도 그렇다. “토씨 하나 안고치고 재청구하겠다”는 거나 3번, 4번 영장을 넣고 급기야 준항고까지 청구하고 나선 모습은 ‘검찰의 오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깨끗이 불구속기소하고 나중에 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해 실형을 선고받을 수는 없었나. 꼭 감금시켜야 수사가 잘되고, 풀어주면 더이상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얘기는 수긍키 어렵다. 

법원도 괴이쩍긴 마찬가지다. 법관이 수사 검사와 ‘법외(法外) 자리’를 갖고 현재 진행중인 사건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길이 없다. 급기야 사법부 수장의 변호사 시절 수임을 놓고 공정성 시비까지 휘말리게 됐다.
처음 빗나간 발사는 갈수록 궤도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법원과 검찰은 몇 안 남은 마지막 성역 중의 하나다. 세상은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바뀌고 있지만 판사님·검사님들의 조직이기주의, 비정상적 권위, 무소불위의 권한을 업은 특권의식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갈등은 국민에겐 득이다. 내친김에 양 기관의 갈등이 더 악화돼 서로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수십년 적폐가 더 곪아 터지기를 위해. 

〈박래용 사회부차장 le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