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가혹행위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것을 두고 상찬(賞讚) 일색이다. 헌사를 더하기에 앞서 부끄럽다는 말을 해야겠다. 이정현·김부겸 같은 정치인들이 지역주의 암벽에 몸을 던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년 전부터 노무현이 걸었던 길이다. 그동안 우리는 입만 열면 ‘망국병(亡國病)’ 운운하면서도 지역주의 타파를 온전히 몇몇 개인들에게 맡겨왔다. 실패하면 “아름다운 패배”니, “희망을 봤다”느니 며칠 띄우고 그만이었다. 잔인하고 무책임했지만 여태 그렇게 해왔다. 개인의 도전과 희생을 전체의 문제로 살펴보려는 노력은 미미했다. 그래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한 선거구에서 1인을 뽑는 지금의 소선거구제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부활했다. 당시 총선 결과는 노태우의 민정당이 125석, 김대중의 평민당 70석,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59석,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35석을 차지했다. 평민당은 호남, 민주당은 부산·경남, 공화당은 충청을 석권했다. 3김에게 지역 맹주라는 이미지가 들러붙은 첫 선거였다.
그 전까지 선거는 ‘여촌야도(與村野都)’로 대표됐다. 농촌에선 여당이, 도시에선 야당이 싹쓸이했다.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이 대도시에서 얻은 의석은 서울 1석, 부산 2석, 대구 1석이었다. ‘여촌야도’는 박정희 정권이 1973년 제9대 총선부터 선거구제를 소선거구에서 중선거구로 바꾼 배경이 되었다. 유신과 5공 정권은 지역구마다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 덕분에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해왔다.
소선거구제로 바꾼 것은 이 때문이었다. 대통령 직선제와 소선거구제 전환은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로부터 26년 동안 소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를 7번 치렀다. 특정 지역에서 공천만 받으면 지팡이를 꽂아도 당선되는 비정상적인 선거가 강산이 두 번 바뀐 이후에도 계속됐다. 선거 때마다 정치를 새롭게 하자고 했지만 낡은 정치 구조는 더욱 깊어졌다. 지역주의에 기생한 정치인들은 국민을 보는 정치가 아니라 보스에게 줄 서는 정치를 해왔다. 대화와 타협 대신 ‘돌격대’ ‘저격수’가 판을 치고, 적대심과 편가르기는 가장 효과적인 득표수단이 됐다.
소선거구제 부활 당시 선거법 협상에 참여했던 민정당의 고건 의원은 후에 “소선거구제는 우리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술회했다. 그가 2010년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으로 맨 먼저 한 일은 선거구제 개편을 건의한 것이었다. “특정 정당이 지역의 모든 의석을 독점하는 정치구조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란 의견이 붙었다.
2012년 총선에서 부산의 정당 득표율은 새누리당 49.9%, 민주당 39.2%였다. 의석은 새누리당 16석, 민주당 2석이었다. 호남에서도 새누리당은 10% 안팎의 득표율을 얻었으나 의석은 ‘제로(0)’였다. 부산의 40%와 호남의 10% 민심은 대변할 사람을 잃고, 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됐다.
소선거구제는 3김의 정치적 노획물이기도 했다. 2014년 대한민국이 1987년 체제의 결과물인 3김의 지역 할거(割據)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1988년과 지금은 크게 다르다. 그때는 1인당 국민총소득이 4548달러였다. 소득도 의식도 달라진 지금 그때의 옷이 맞을 리 없다.
이제 선거구제 개혁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 중선거구제, 석패율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 해법은 다 나와 있다. 이 중 하나만 있었더라도 김부겸과 이정현은 진작에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는 꿈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 소수정당이 출현해 다양한 민의를 대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중선거구제 폐지' 퍼포먼스 (출처 : 경향DB)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무르익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대표 시절 “하나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여당의 김무성 대표도, 야당의 원로들도 선거구제 개편에 한목소리다. 제헌절 기념사에서 선거제 논의를 제안한 정의화 국회의장이 앞장설 수도 있다. 1987년형 민주주의를 21세기에 맞게 바꿔놓는다면, 그것만으로 밥값을 다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지역 패권구도를 손보지 않고서는 미래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이를 언제까지나 개인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다. 이정현은 큰 식당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고 한다. 김부겸은 면전에서 명함이 찢기는 수모를 당했다. 온몸이 시퍼렇게 정치적 구타를 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치권의 가혹행위도 끝내야 한다.
박래용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