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박지성이 그리스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를 전달받은 뒤 봉송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개최한 3대 대형 스포츠 이벤트엔 14~16년 간격으로 국민소득이 1만달러씩 올라가는 시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후진국에서 가난의 어둠을 뚫고 나온 한국의 역동성과 활기를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알리고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 응원은 시민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국민소득 2만달러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2018년은 선진국 진입의 척도라는 3만달러 벽을 넘어서는 해이다. 평창 올림픽은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도전에서 유치에 성공했다. 10년의 비원(悲願)이 풀린 것이다. 하계올림픽, 월드컵, 동계올림픽 개최라는 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한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을 포함해 6개국밖에 없다.
강원도는 분단국가 내에서도 남북이 갈라진 분단도(道)이다. 그곳에서 사흘 뒤면 올림픽이 열린다. 대통령 탄핵이 없었다면 2월9일 개회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개막을 선언했을 것이다. 평창 올림픽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유치했고, 박근혜 정부가 준비했다. 두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문화 융성과 관광산업 발전의 기회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대한민국을 또 한번 세계에 각인시키며 한류와 최첨단 IT 통신으로 전개되는 고품격 콘텐츠 올림픽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비무장지대(DMZ)를 개방해 생태평화공원을 만들고 통일시대에 대비하는 평화올림픽과 환경올림픽을 세계인에게 보여주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두 정부의 노고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는 테이프 커팅을 한다. 올림픽은 보수나 진보의 행사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대사(大事)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정권을 어느 당이 잡느냐에 따라 의미와 평가가 달라질 수는 없다.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폐회식에 북한 최고위급 3인방이 깜짝 방문하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이번에 북측이 잘했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1면에 ‘감동의 인천, 성화가 꺼진 자리에 남북화합의 불꽃이…’라는 제목으로 시인의 글을 실었다. 그게 온당한 평가다. 인천이든, 평창이든 마찬가지다. 때로는 바깥 눈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르몽드는 “한반도에 전쟁의 공포가 가시고 그 자리에 평화가 다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남북 단일팀은 그들이 치를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작은 하나의 승리”라고 했다. 평창은 강원도의 작은 도시가 아니라 세계인들의 평화 염원을 담은 땅이 되었다.
지난 10년간 남북관계는 단절됐고, 대북여론은 악화됐다. 핵무장한 북한을 이전과는 다르게 보는 시각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걱정했었다. 김정은은 “핵미사일 단추가 책상 위에 있다”고 하고, 미국은 코피를 터뜨리겠다고 했다. 정상적으로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직도 불안하다. 북·미 간 언사는 여전히 험악하다. 평창 올림픽 휴전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평화일 뿐이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출신 그레이엄 앨리슨은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으로 인류가 또 한번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면서 한반도가 제3차 세계대전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어 지도자들은 상대국에 맞서지 못하면 불명예이자 재앙이라고 믿는 국내 정치인들과도 씨름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세계의 지성에 호소했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흐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가능성이 실현되는 결과를 막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라.” 그의 호소는 평창 올림픽 이후에 더 요긴할 것 같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