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아침을 열며
[아침을 열며] 돈 선거 뿌리뽑기의 ‘정답’
박래용
2008. 4. 27. 10:19
이 망국의 습벽(習癖)을 어찌할까.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18대 총선 얘기다.
벌써 당선자 3명이 구속수감됐다. 4·9 총선이 끝난 지 2주일 만이다. 구속자는 더 늘어날 것 같다.
검찰이 현재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는 당선자만 63명이다.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선거사범이 없었던 때가 없지만 이번은 그 유가 다르다.
통합민주당 정국교 10억원, 창조한국당 이한정 6억원. 당에 냈거나 빌려줬다는 돈이다. 한 사람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고 다른 사람은 전과 4범의 범죄경력과 학력을 속였다. 지역구 당선자인 김일윤씨는 선거운동 중 10억원가량을 살포한 의혹을 받고 있다. 확인된 것만 16억5000만원을 당에 낸 친박연대 양정례 당선자는 본인이든 모친이든 둘 중 한 명은 사법처리 대기 중이다. 어쩌면 서청원 대표도 칼날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한때 사라졌나 했던 돈선거의 재현이어서 충격은 더욱 크다. 혹자는 쟁점이 없는 선거일수록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는 돈과 흑색선전이 춤 춘다고 했다. 혼탁선거의 조짐은 선거 이전부터 감지됐던 일이다. 지방에 출마를 준비하던 한 선배 언론인은 여기저기 손을 벌리며 돈을 요구하는 악다구니들에 놀라 정치 입문의 뜻을 접었다고 했다. 선거운동을 돕겠다며 찾아온 사람마다 돈을 돌려야 조직이 돌아간다고 하고, 돈을 주면 표를 몰아주겠다고 했다고 하는데 ‘악’ 소리를 지를 만하다.
18대 총선 ‘썩은 냄새’ 진동
돈 선거는 대도시보다 중소도시, 농촌에서 더 위력적이다. 아무래도 유권자 수가 적고 노령인구의 비중이 높기 때문인 듯하다. 주민 수명이 자살하고, 수십명이 구속되고, 수백·수천명이 줄줄이 조사를 받은 경북 청도·영천의 ‘돈 선거’가 바로 얼마 전 일이다. 그래도 근절되지 않는 것은 돈 선거의 단 맛을 아는 후보나 유권자가 있기 때문이다.
올 초 전미경제학회는 돈을 뿌리면 실제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까를 주제로 연구한 적이 있다. 결론은 돈 선거가 당선 확률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돈을 받은 유권자는 돈을 준 후보자 쪽으로 표심을 바꾸는 경향을 보였고, 현역보다는 도전 후보에게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손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논문).
직업 중에 국회의원만한 자리는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선거운동기간) 한달 일하고 4년 논다는 말이 나올까. 의원 1명에게 드는 비용은 연간 3억원가량. 장관급 예우와 직권상 누리는 각종 특권 및 특혜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억만금을 주고라도 덤벼들 만하다. 돈으로 배지를 산 국회의원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국회를 이용할 것이다.
작금의 비례대표 부정은 죄질이 더욱 중하다. 비례대표는 분야별로 전문성 있는 인사들과 소수자 대표들을 의회정치에 참여시켜 구석구석 국민의 뜻을 반영시키자는 취지다. 그런 자리를 돈을 받고 팔았다면 민주주의를 매매한 것과 다를 바 없다.
2004년 17대 총선 후엔 국회의원 당선자 46명이 기소돼 이 중 11명이 최종 당선 무효가 됐다. 4분의 3은 이렇게 깎이고 저렇게 봐줘서 금배지를 4년내 무사히 지켰다.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토양을 법원이 만들어준 게 아니냐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엄격한 수사·판결 지속돼야
엊그제 대전고법 김상준 부장판사는 솜방망이 처벌 관행에 젖은 법원에 스스로 죽비를 때렸다.
“정치사범에 대해 공직 상실의 불이익을 중시한 나머지 마치 면죄부를 주는 듯하게 보였던 그동안의 양형 관행은 재검토돼야 한다. 주먹다짐 상해사건에서나 볼 수 있는 소액의 벌금형 선고는 사법부의 부패정화 의지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 남길 뿐이다.”
그러면서 그는 불법 정치자금을 주고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 국회의원에 대해 1심의 벌금형을 깨고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뒤 법정구속했다. 김 부장판사는 “정직하고 경쟁력있는 정치인을 통해 민주주의적 국가 발전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에 정면으로 도전한, 반드시 근절돼야 할 범죄”라고 정의했다. 김 부장판사의 언도는 정답이다. 돈 선거를 뿌리뽑는 유일한 해결책은 혹독한 수사와 판결, 그리고 그들을 잊지 않고 정치생명을 끊어버리는 유권자의 기억과 결단이다.
< 박래용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