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 이후
오는 6월 지방선거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이겼다. 올해 지방선거까지 이기면 3연속 전국선거 승리라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다. 민주당 사상 처음이다. 총선과 대선 승리로 이미 중앙과 여의도의 권력 지도는 바뀐 상태다. 권력의 뿌리는 지역에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지방권력까지 넘어가면 권력 주류 교체의 완성이다. 민주당 내에선 “트리플 크라운을 만들어 대한민국 정치사를 새로 쓰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대선에 이어 보수가 분열돼서 치르는 두번째 선거다. 보수는 이전에 분열돼서 선거를 치른 적이 없다. 역대 모든 선거는 보수진영이 주도했다. 선거 때마다 민자당 대 반민자당,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 구도였다. 그래서 야권에선 후보 단일화 얘기가 빠짐없이 등장했다. 민주당 대 반민주당 구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일자리! 설자리! 살자리!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새로운 건 또 있다. 대선은 전망적 투표라고 한다. 유권자들은 대선 후보가 비전과 정책을 갖고 미래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지를 본다. 반면 총선과 지방선거는 회고적 투표다. 정부 여당을 심판하는 중간평가적 성격을 띤다. 2010년 지방선거는 천안함 침몰 직후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여당에 맞서 야당은 평화를 내세워 ‘전쟁과 평화’ 프레임을 만들었다. 결과는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선 세월호 참사 이후 야당은 ‘국민 안전’을 최대 이슈로 내걸었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이번엔 국정심판 얘기도, 여야 간 프레임도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한 양상이다. 야당에선 ‘평화 대 위장평화’ ‘사회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프레임을 만들어보려 하지만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흔히 유권자들의 이념성향은 진보 30%, 중도 40%, 보수 30%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지금 70%를 상회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진보와 중도를 합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중도 성향 유권자 거의 모두가 야당의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오히려 야당 심판이 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길거리에서 보는 예비후보들은 너나없이 파란 점퍼를 입고 어깨에는 1번이 쓰여진 띠를 두르고 있다. 빨간 점퍼를 입은 후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야당의 적나라한 실정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명박·박근혜를 감옥에 보내놓고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지 않았고, 반성하지 않았고, 변하지도 않았다. 시민을 끌어안지 못했고 희망도 주지 못했다. 유권자들의 인내심은 이제 임계점에 달한 상태다. 지금 보수 지지층은 자포자기에 빠져 있다. 믿고 기댈 수 있는 리더도, 정당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지방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보수는 풍전등화의 신세가 됐다.
지방선거 이후 최대 관심사는 보수의 미래가 될 것이다. 한국당이 처절하게 패한다면 종북몰이하는 안보보수, 태극기집회로 대표되는 아스팔트 보수에 대한 심판이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더 이상 정치판에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시민을 두 쪽으로 편가르기 했던 가장 손쉬운 정치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한국당의 참패는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처절한 반성과 쇄신을 통해 합리적 대안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당을 정비하고 개혁적 보수의 길을 걸을 때 보수는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원칙을 지키면서 보수혁신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유권자의 마음을 조금씩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길게 보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시민은 새로운 보수를 원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걸맞게 보수 가치를 재구성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한국 정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현재 보수 야당에선 잠룡은커녕 토룡도 안 보인다. 민주당은 8월 임기가 끝나는 추미애 대표 후임으로 김부겸·김영춘 장관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둘 다 ‘바보 노무현’을 잇는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 인물이다. 의미도 있고, 또 한번의 진화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내년 7월까지 임기지만, 선거 참패 결과가 나오면 당장 대표 사퇴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차기 대표로는 김무성·나경원·정우택·심재철·이완구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들이 보수의 재건을 이뤄낼 수 있을까. 정치에서 오류나 실수, 패배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이런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고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지금 보수진영에선 어떤 철학과 인물로 재건하고 어떤 수권전략으로 외연을 넓혀나갈지에 대한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보수진영의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수 없다. 보수는 사람을 키우지 않았고, 세대교체에도 실패했다. 그게 더 큰 문제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