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려면 씨를 뿌려야 한다
촛불혁명, 탄핵, 대선, 6·13 지방선거를 관류하는 민심의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 주요 고비마다 시민들이 앞장서 정치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고, 진화된 시민들이 길을 내고 있다.
지방선거 압승 이유로 시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잘해서와 보수야당이 못해서라고 답했다.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잘해서라고 답한 사람은 4.1%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당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국회에서 개혁입법이 이뤄진 것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관련 법안 242건 중 39건만이 처리됐다. 여당은 보수야당의 발목잡기를 핑계로 대지만, 지하철이 막혀서 늦었다는 말과 같다. 언제까지 야당 탓만 하며 울고 있을 수는 없다. 지방선거 이후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동반급락했다. 현 정부 들어 가장 강한 부정적 기류다. 야당 혐오에 대한 반사효과가 퇴조했고, 여당으로서 책임성 평가가 본격화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시민들은 징징대는 여당에 슬슬 짜증을 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조간에 실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대표 및 비대위 구성에 대한 기사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김기남 기자
보수야당 심판은 끝났다. 더 이상 야당 심판 프레임은 먹히지 않는다. 이제는 민주당의 차례다. 시민들은 민주당이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집권 중반기는 인기에만 의존할 수 없다.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그대로다. 지난 1년 수많은 개혁안이 국회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개헌안은 대표적 사례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한다면 개혁이 실현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검찰·노동·교육·복지·세제·재정개혁은 실종된 개헌안의 전철을 되밟을 수밖에 없다. 보수야당은 지금 혼수상태다. 친박 대 비박, 복당파 대 잔류파는 “나는 빼고 쇄신”을 외친다. 결론 없는 도돌이표 갈등 구조다.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 개혁입법에 협조적일지는 의문이다. 내분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더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런 야당의 선의를 기약 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국회는 정글이다. 선의는 자신이 행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게 아니다. 시민들은 눈을 밟아 길을 내고 있다. 민주당은 누군가 눈을 밟아 녹여 주기를 기다리는가.
그래서 민주당·평화당·정의당 등 개혁입법연대는 매혹적이다. 범여권이 연대하면 157석, 과반 확보가 가능하다. 탄핵을 추진했던 세력들이 탄핵연대를 넘어 개혁입법연대를 구축하는 모델이다. 안철수가 빠진 바른미래당도 동참이 가능하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은 이들을 묶는 공약수다. 대의도 있고 명분도 있다. 개혁입법연대가 현실화하면 촛불민심이 열망하는 개혁입법을 강력히 실행할 수 있다. 소수파 야당이 국회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범진보세력의 안정적인 표 확보는 보수정당을 압박해 개혁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다.
연대는 협치와 맞닿아 있다. 협치와 소통은 시대정신이다. 연정은 연대가 진화할 경우 국정운영에 공동 파트너십을 전제로 지분을 인정할 수 있다. 통합은 맨 마지막 단계다. 민주당과 평화당은 한 뿌리다. 다음 총선에는 하나로 합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범여권의 선제적 통합은 시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섣부른 몸집 불리기는 역풍이 불 수 있다. 보수야당발 정계개편이 이뤄져 원내 1당 지위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면 통합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전략적 대칭이다. 그것은 시민들도 용인할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다. 연대→연정→통합의 3단계 방식은 진행형이다. 첫 단계인 개혁입법연대는 이념을 같이하는 세력이 힘을 합쳐 새로운 길을 가자는 것이다. 소수당에서 더 적극적이다. 민주당의 입장이 궁금하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물어봤다.
- 당신이 말한 ‘협치의 제도화’는 뭔가.
“개혁입법 등 국회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야당과 힘을 합치자는 것이다. 국정 안정을 위해 과거와는 다른 틀을 만들어야 한다.”
- 연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는가.
“여러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중이다. 법안 등 각론을 놓고 의견을 맞춰보고 있다.”
- 개혁연대의 성사 가능성은 얼마로 보나.
“현재로선 60~70%쯤 된다.”
- 언제쯤 가시화가 될까.
“7~8월 준비해서 9월 정기국회에서 성과를 내는 게 목표다.”
- 연정과 통합으로도 진전될 수 있나.
“그 단계는 지지자들과 국민들의 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다.”
꽃을 보고 싶다면 씨를 뿌려야 한다. 시민의 에너지를 정치에 결집해 혁신으로 연결하는 것은 이제 온전히 여당의 몫이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