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용 칼럼

참여정부 시즌2가 성공하려면

박래용 2018. 7. 24. 11:24

2007년 대선 참패 후 안희정은 “친노는 폐족(廢族)이다.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폐족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는 자손이다. 벼슬을 할 수 없는 폐족이 10년 만에 권부(權府)를 장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문재인은 대통령이 됐다. 초대 비서실장 문희상은 입법부의 수장에 올랐다. 대변인이었던 이낙연은 총리다. 청와대와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 대 12였던 참패는 2018년 13 대 2로 뒤집어졌다. 국회는 노무현의 사람들이 30명에 달한다. 압권은 노무현의 정책 브레인 김병준이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직을 맡은 것이다. 그는 보수 대개조를 말하고 있다. 10년 만의 천지개벽이다. 이해찬 전 총리까지 민주당 대표에 오르면 온 사방 천지에 노무현 사람들이다. 참여정부 때보다 더 막강하고 광범위하다. 무엇이 이들을 다시 부른 것일까. 문희상 국회의장은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골고루 잘사는 세상, 특권 없는 세상, 원칙이 통하는 세상, 정의와 평등을 주장한 세력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고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모식이 열린 5월 23일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추모의 집을 찾은 시민이 손자와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은 말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이 나라는 민주화투쟁을 하기엔 너무 진보했다. 내가 싸울 상대는 무형의 것이다. 그것은 제도이다. 정책이다. 제도의 합리화, 정책의 투명성이 내 싸움의 상대이다.”

 

노무현은 구체제의 잘못된 관행, 불공정, 반칙과 특권이 싸움의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는 적폐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스템을 세우려 했다. 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를 출입하며 노무현이 몇 세대를 앞서 너무 일찍 대통령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 같았다. 그의 생각은 옳았고 꿈은 창대했지만 다수의 시민을 끌고 가지 못했다. 정치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온갖 개혁은 지금은 당연하지만 그때는 현실의 벽이 높았다. 노무현의 싸움은 당장 먹고사는 민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시민들은 느꼈다. 더디니까 급했고, 급하니까 서툴렀다. DJ는 정치인은 국민 반 발짝만 앞서 가라고 했다. 노무현은 항상 시민들의 몇 발짝 앞에 있었다. 그를 지지하고 열광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시민들도 많았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완강했다. 노무현은 담론을 선도하는 정치를 펼치다 고립됐다.

 

10년이 지났다. 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비난했던 사람들도 알게 됐다. 그의 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노무현의 꿈은 깨어 있는 시민의 힘으로 부활했다. 노무현을 탄핵에서 구해냈던 시민들은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촛불이 혁명이라면 혁명주체세력은 시민이다. 새롭게 형성된 시민에너지는 총칼보다 강했다. 시민들은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했던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공격하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죽이기를 무력하게 지켜만 봤던 그때의 시민들이 아니다.

 

그 시민들이 노무현 사람들의 독식을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문재인 후보는 “우리 진영의 논리에 갇혀 중간층 지지를 확장해 나가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손학규 상임고문은 “우리의 눈높이에 국민을 꿰맞추려 했다”고 했다. 참여정부 시절 친노는 포용과 화합을 거부하는 독선, 세상을 재단하는 편협성, 편 가르기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민 다수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나만 옳다는 독선과 아집, 완장이라도 찬 듯한 행세, 시민단체식 아마추어 발상, 허울뿐인 개혁으로는 시민의 마음을 사기 어렵다. 무능하면서 오만한 정권을 시민들은 역겨워 한다.

 

참여정부 시즌2는 이런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성공 비결은 자명하다. 노무현은 시민보다 앞서갔지만 문재인은 시민과 함께 가야 한다. 담론과 정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담론만 강하면 공허하기 쉽고, 정책만 능하면 방향을 잃을 수 있다. 10년 전 기득권·수구보수세력에 기울어진 운동장은 정반대가 됐다. 이제는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수도 없다. 문 대통령은 “모두들 앞으로 진보·개혁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만 논의할 뿐, 그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라고 했다<문재인의 운명>). 맞는 말이다. 노무현의 사람들도 ‘무엇’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성과로 말을 증명해야 한다. 우연한 성공은 없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