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차기 3인, 김병준·안철수·손학규
보수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진보진영엔 차기 대권주자가 여럿 있다. 안희정은 떨어져 나갔고 이재명도 사실상 아웃이다. 남은 잠룡은 박원순·이낙연·김부겸이 유력하다. 임종석·김경수도 차기에 거론되지만 두고 볼 일이다.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주자는 세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병준·안철수·손학규(왼쪽부터)
첫 번째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64)이다. 김병준은 권력욕이 있다. 야심이 크다. 2007년 대선 때 MB(이명박)에 맞선 정동영이 죽을 쑤자 다른 당을 만들어 출마하려고 했다. 2012년 박근혜 정권에선 친박 싱크탱크인 ‘포럼 오늘과 내일’(약칭 오래포럼)의 정책연구원장으로 참여했다. ‘오래포럼’은 민주당을 탈당하고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던 함승희 전 강원랜드 사장이 만든 연구단체다.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을 총리에 내정한 것은 그 연장선이다. 그는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근혜는 국회의 반발에 부닥치자 총리 내정 엿새 만에 철회했으나 김병준은 그 뒤에도 “여야가 나를 총리 후보로 추천할 수도 있다. 상황이 진전됐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권력의 창을 두드려왔다. 총리 내정 발표 직전에는 당시 안철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상태였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정무 감각은 떨어지는지 몰라도 권력의지만큼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 보수 혁신을 총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의 최우선 과제인 인적청산은 뒤로 미루고 있다. 당내 입지 구축을 위해 친박과 비박 모두를 안고 가려 하기 때문이다. 국가주의 등 거대 담론을 꺼내든 것은 장기전으로 가기 위한 전략이다. 그가 울먹이며 말한 ‘역사적 소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두 번째는 안철수(56)다. 안철수는 퇴장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6월 서울시장 선거 패배 후 “국민이 다시 소환하지 않는다면 정치에 복귀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번역기를 돌리면 ‘국민이 부르면 언제든지 정치에 복귀한다’는 얘기와 한가지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랬다. DJ는 대선에서 패한 후 영국으로 갔고, 안철수는 독일로 갔다. 그는 대선 패배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가 석 달 후 당 대표로 복귀했다. 정치인의 말은 어음만도 못하다. 시민들의 기억은 부드럽고 잘 구부러진다. 외상 종이 쪼가리를 들고 추궁할 시민은 많지 않다. 안철수는 정치 입문 7년간 두 번의 대선과 두 번의 총선, 세 번의 창당을 경험했다. 2011년 시민운동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할 때는 지지율 50%를 기록하는 ‘안철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그 환호, 그 열광, 안철수 현상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꺾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하지만, 진 꽃은 다시 필 수 있다. 선거에서 졌을 뿐 그의 정치가 꺾인 것은 아니다. 새정치에 대한 시민의 갈증은 여전히 남아있고, 부활의 기회가 올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세 번째는 손학규(71)다. 그에게 바른미래당 대표는 대권으로 가는 사다리다. 그는 “정계개편의 중심에 설 것”이라며 당권에 도전했다. 손학규의 시선은 당권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지독하게도 운이 없는 정치인이다. 정치적 중대 결단을 내릴 때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고,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지고, 삼성 이재용이 구속됐다. 그가 새 운동화를 사면 항상 장마가 시작됐다. 정치행로는 비운(悲運)이었지만, 그의 정치는 현재 진행형이다. 대권주자 자격은 차고 넘친다. 과거 대선 때마다 적합도 조사에선 항상 대통령감 1위를 차지했던 그다. 그는 나라의 틀을 바꾸어 7공화국을 건설하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손학규 징크스’는 깨질 수 있을까. 손학규가 당 대표가 되면 안철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그래서 안철수가 다른 후보를 민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2022년 대선은 4년이 남아 있다. 그사이 정치는 요동치고 격변할 것이다. 범보수진영의 통합은 분명하다. 단시일 내 통합이 이뤄지긴 어렵다. 2020년 총선을 겪으며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각자도생, 소통합 등 여러 번 몸을 굴려야 할 것이다. 세 사람 중 누가 보수의 차기 주자가 되든 보수당으로선 진일보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젊은 인재를 찾고, 낡은 이념의 껍데기를 벗어던지면 보수의 재건은 가능하다. 영국식 보수혁신의 청사진을 보여준다면 새 길이 열릴 것이다. 보수가 동굴 속에서 빠져나온다면 그 자체로 우리 정치의 발전이다. 손오공이 타고 다닌 근두운(筋斗雲)은 한번에 10만8000리를 간다고 한다. 세 사람은 모두 구름 위에 올라타 있다.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른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