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아침을 열며
[아침을 열며] “여사 위에 가정부 있다”
박래용
2008. 8. 17. 10:21
우리 사회에서 “두고 보자”는 말은 내가 졌다는 뜻이다.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 돌아서봤자다. 그냥 졌다고 하기 뭐하니까 괜히 해본 소리란 것은 서로가 다 안다. 그래서 승자는 “두고 보자는 놈 하나도 안 무섭다더라”고 말 대접을 하고 적당히 물러서주는 게 미덕으로 통한다.
반면 “법대로 하자”는 말은 세상 살면서 가능한 한 안 듣는 게 상책인 가장 무서운 말이다. 그동안의 논란과 시비에 종지부를 찍고 지금부터 죽기 살기로 싸워 보자는 선전포고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뒤에 든든한 뭐라도 있는 건가, 내가 사람 잘못 건드린 것 아닌가 해서 공연히 쫄아들게 된다. 법이 지금까지 내 편이었던 기억이 별로 없는 필부들은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경험칙상 법은 가진 자의 무기이자 방패라는 사실을 잘 안다. 법이 돈 없고 ‘빽’ 없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법이 어찌어찌한 경우에 힘 없는 자에게 온정을 베풀었다는 것은 곧잘 뉴스가 되곤 한다.
법의 시초가 그렇다. 법은 국가 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사회규범이다. 행위의 준칙을 정해놓고 그 선을 위반하는 경우엔 제재를 가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상식 벗어난 ‘공천 로비’ 수사
국가 권력은 위기 때마다 법과 원칙을 외친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법대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사례는 신물이 나도록 봐왔다. 이명박 정부의 ‘법대로’도 그 못지 않다. 낙천·낙선자 공기업 낙하산 임명, 국가기관을 총동원한 방송장악, 촛불 사법처리, 재벌총수 싹쓸이 특별사면….
취임 6개월도 안됐지만 웬만한 것은 다 봤다. 이 정권이 사실상 민간독재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촛불은 국민이 못먹겠다는 걸 수입한다고 해서 시작된 시위다. 그랬다고 연행된 시민이 석달 새 1400여명을 넘어섰다.
촛불이 많을 땐 사과하고, 촛불이 줄어드니 잡아들이는 MB식 법집행이다. 이명박 정부는 아마 ‘법치(法治)’라는 미명의 강제규범을 통해 국정 장악력을 회복하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검찰과 경찰은 그러한 법을 집행하는 머리와 손과 발 노릇을 하고 있다. 이미 검·경으로 상징되는 국가 공권력은 신뢰상실의 징후를 넘어서 심각한 조롱의 대상이 돼가는 분위기다. 나를 잡아가라는 시민들의 ‘닭장차 투어’ ‘자수 운동’은 대표적인 예다.
취임 6개월도 안됐지만 웬만한 것은 다 봤다. 이 정권이 사실상 민간독재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촛불은 국민이 못먹겠다는 걸 수입한다고 해서 시작된 시위다. 그랬다고 연행된 시민이 석달 새 1400여명을 넘어섰다.
촛불이 많을 땐 사과하고, 촛불이 줄어드니 잡아들이는 MB식 법집행이다. 이명박 정부는 아마 ‘법치(法治)’라는 미명의 강제규범을 통해 국정 장악력을 회복하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검찰과 경찰은 그러한 법을 집행하는 머리와 손과 발 노릇을 하고 있다. 이미 검·경으로 상징되는 국가 공권력은 신뢰상실의 징후를 넘어서 심각한 조롱의 대상이 돼가는 분위기다. 나를 잡아가라는 시민들의 ‘닭장차 투어’ ‘자수 운동’은 대표적인 예다.
5공 시절 “서울대 위에 육사 있고, 육사 위에 보안사 있고, 보안사 위에 여사(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가 있다”란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 무렵 지방 어느 미용실에서 젊은 미용사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자 검·경은 “간첩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며 공안사건으로 몰아가려 했다.
야당 의원들은 “여사 위에 미용사가 있는 모양”이라고 비꼬아 국민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미용사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면 간첩이 내려와 죽이고 도망갔겠느냐”는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여사 위에 미용사가 있는 모양”이라고 비꼬아 국민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미용사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면 간첩이 내려와 죽이고 도망갔겠느냐”는 것이다.
법 못지 않게, 아니 법보다 상위 개념이 이른바 ‘사회적 통념’이다. 한마디로 상식이다. 엊그제 검찰은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공천로비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요지는 사촌언니의 청와대 파트너는 영부인을 모시는 가정부란 것이다. 공천 로비 선불조로 30억원을 받은 사촌언니가 청와대와 10여차례 통화했는데, 내용인즉슨 관저 가정부와 빌려 쓴 돈 1000만원 얘기를 나눴다는 게 검찰의 수사발표다. 공기업 감사에, 대기업 취업 명목으로 2억원을 더 받았으나 역시 돈만 받고 로비는 일절 없었다고 한다. 이런 발표를 믿으라는 얘긴가.
단돈 30만원을 먹었더라도 애초 안받았으면 모를까 주머니에 챙겼으면 여기저기 나름 알아보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세상 이치다. 비극은 이런 일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류의 삽화를 종종 대하게 될 것 같다.
단돈 30만원을 먹었더라도 애초 안받았으면 모를까 주머니에 챙겼으면 여기저기 나름 알아보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세상 이치다. 비극은 이런 일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류의 삽화를 종종 대하게 될 것 같다.
검찰, 5년전 기개 어디로 갔나
참여정부 시절 ‘검사와의 대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핏대를 세우던 검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검사들은 현직 대통령에게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지금도 독재의 주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다. 5년 전 대통령에게 눈을 치켜뜨던 검찰의 그 기개는 다 어디로 갔는가. 여사 위에 가정부가 있다는 검찰의 수사, 부끄럽지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