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네 편, 우리 편
# 여성가족부가 2007년 도입한 아이돌봄사업이 있다. 만 12세 미만 자녀를 둔 가정에 방문해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한다. 전국에 아이 돌보미는 2만1000여명이 있다. 정부는 올 1월부터 휴게시간을 의무화했다. 4시간 일하면 30분, 8시간 일하면 1시간을 꼭 쉬어야 한다. 돌보미들이 쉬는 동안 아이는 누가 볼까. 여가부는 “가족, 친·인척이 휴게시간 동안 대신 돌보라”고 했다. 30분 쉬는 동안 아이를 맡아줄 친·인척이 대기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부모들은 “차라리 로봇돌보미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당사자인 돌보미들도 “아이한테 눈을 떼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1월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년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노영민 비서실장을 비롯한 신임 비서진이 배석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 기자단
# 통계청이 가계소득 조사의 정확도를 높이겠다며 새로 선정한 7200 표본가구들에 매일 가계부를 쓰게 하고 이에 불응하면 최대 2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가계동향조사 표본가구로 선정되면 소득부터 지출 내역을 다 쓰고 영수증까지 붙여야 한다. 금융정보가 담겨 있는 가계부를 집 앞에 걸어둔 ‘수거 주머니’에 담아두면 걷어간다. 궂은일을 강요하면서 인센티브는커녕 불응 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권위주의적 접근 방식에 비판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 조치”라고 질타했다. 통계청은 “과태료는 앞으로도 부과하지 않을 것이고, 검토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 국회는 지난해 아동수당 신설을 확정하며 소득 상위 10% 가정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건희 회장 손자 같은 금수저에게도 돈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금수저 10%를 골라내기 위한 행정비용은 1600억원에 달했다. 상위 10%를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면 1000억원가량 예산이 줄어든다. 금수저를 거르는 데 드는 비용이 모두에게 아동수당을 주는 것보다 많은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이 법안을 추진했던 한 의원은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국회는 아동수당을 모두에게 주기로 법을 바꿨다.
정책은 실험이 아니다. 시민은 모르모트(실험용 동물)가 아니다. 원망은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실망이 더 무섭다. 최초 5000원권의 율곡 선생은 서양인의 모습이었다. 1972년 금융당국은 영국 회사에 5000원권 화폐 원판을 제작 의뢰했다. 영국 회사는 율곡 선생의 초상을 서양인의 얼굴로 그려 보내왔다. 시민들은 ‘서양 율곡’이라 했다. 이 5000원권은 다시 한국인의 얼굴로 바뀌기까지 10년 가까이 통용됐다. 세금이 내 돈이요, 시민이 피붙이라면 이렇게 건성으로 일하진 않을 것이다.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건성으로 일하니 ‘서양 율곡’이 나오는 것이다.
나랏일에 설렁설렁은 있을 수 없다. 명종의 병세가 위중하자 요즘 말로 하면 장관들이 돌아가며 궁궐을 지켰다. 밤중에 왕의 병세가 갑자기 위중해졌다. 후계조차 못 정한 상태였다. 그날 숙직자인 영의정이 침실 밖에서 뒤를 이을 사람을 물었다. 왕후가 덕흥군의 셋째 아들로 보위를 이으라신다고 전했다. 여러 대신들이 속속 달려오고 있었다. 영의정이 말했다. “소신은 귀가 어둡습니다. 다시 하교해주소서.” 왕후는 두 번 세 번 또렷하게 다시 말했다. 영의정은 뻔히 듣고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영의정은 승지에게 왕후의 전교를 받아 적게 했다. 승지는 셋째 아들이란 뜻의 ‘제삼자(第三子)’의 삼(三)을 삼(參)으로 썼다. 일(一), 이(二)와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다. 훗날 오해도, 시비도 없게 하려는 뜻에서다. 신중함이 몸에 배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다. 공직자는 그래야 한다. 공직자의 자세가 몸에 배지 않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에겐 ‘삼(參)의 교훈’이 더욱 절실하다. 담배 피우다 인사자료를 분실했다는 어공 행정관의 얘기는 이 정부가 실력 있는 정부인지를 묻게 한다. 오색풍선이 하늘을 나는 건 색깔이 아니라 그 안에 든 헬륨 때문이다. 자질이 없는 공직자는 비치지 않는 등불, 고장 난 신호등과 같다. 시민들은 매일 그 길을 지난다.
엊그제 청와대 2기 참모진을 개편했다. 설 연휴 후엔 개각도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나랏일 하는데 내 편 네 편이 따로 없다. 참모진엔 내 편을 앉혔다. ‘비서’는 그럴 수 있다. 장관은 다르다. 내각은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책신뢰를 받아야 한다. 실력과 신중함, 전문성과 실용을 갖추고 그 분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어느 장관은 십수명의 후보가 고사한 끝에 기용됐단 말도 있다. 인물난 현실은 이해된다. 그래서 인재 풀의 확대는 더욱 필요하다. 내 편 네 편을 다 합해야 우리 편이 만들어진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