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
1996년 프랑스 극우 정치인 장 마리 르펜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 “흑인과 이주민 출신이 너무 많다. 국가도 부를 줄 모른다”고 비난했다. 흑인이 많다고 ‘검은 프랑스’라고 불렀다. 대표팀의 주장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단이 이끈 프랑스 대표팀이 1998년 월드컵, 2000년 유로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르펜의 말은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대표팀은 프랑스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예일대 교수 에이미 추아는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로마·영국·몽골이 역사에서 대제국을 세운 때는 종교·인종을 뛰어넘어 통합했을 때였다고 했다. 유럽의 소국인 네덜란드는 잔인한 종교박해가 휩쓸던 1492~1715년 사이에 숙련된 기술과 자본력을 가진 이주민들을 대거 받아들여 유럽 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19세기 영국은 다양한 이주민에게 본토박이 잉글랜드인들과 똑같은 정치·사회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성장했다. 반면에 종교와 인종 갈등으로 분열됐을 때 제국은 어김없이 붕괴되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치명적인 종교적 불관용에 들어서면서 제국의 쇠락은 시작되었다.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왼쪽부터)이 2018년 12월 28일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우리나라 성씨는 5582개. 이 중 한자 없는 한글 성씨는 4075개로 대부분 중국·필리핀·일본·베트남계 등 귀화한 외국인들의 성씨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이참(베른하르트 크반트)은 독일 이씨, 국제변호사인 하일(로버트 할리)은 영도 하씨 시조가 되었다. 태국 태씨, 몽골 김씨, 대마도 윤씨, 길림 사씨도 있다. 이제 우리도 단일민족보다 다민족문화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입·복당을 불허한 것을 놓고 ‘순혈주의’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두 의원이 과거 선거에서 우리 당 후보들의 낙선 활동을 했다”고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 당내에선 “순혈주의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는 말이 나왔다. 보수정당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황교안 전 총리를 받아들이며 반문연대의 세를 넓히고 있다. 민주당은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내치고 있다. 에이미 추아는 대제국의 비결은 관용과 포용이요, 포용을 상실하면 몰락한다고 했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