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호칭
부부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호칭이다. 남편의 누나는 형님, 형은 아주버님, 여동생은 아무리 어려도 아가씨다. 남편의 남동생은 미혼일 땐 도련님, 결혼 후엔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게 국립국어원이 규정한 예법에 맞는 표현이다. 처가 쪽은 다르다. 아내의 남동생은 처남, 아내의 여동생은 처제, 아내의 언니는 처형이다. 우리 가족 호칭이 가부장적,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 탓이다. 지난해 3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계여성의날’ 기념집회에 한 참석자는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출처:경향신문DB)
시댁 식구에게만 존칭을 사용하는 호칭이 불평등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시댁과 처가라는 말부터 “남편 집은 댁이고, 우리 집은 그냥 집이냐”는 반발이 나온다. 그래서 시댁을 빗대어 ‘시월드’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나이 어린 시댁 식구들을 존대하기 어색하다보니 “애초 부를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최상” “꼭 해야 할 얘기가 있다면 말끝을 흐린다”는 경험담도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말 국립국어원 설문조사 결과 시민 10명 중 9명(86.8%)이 남편의 형제들만 존대하는 호칭을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여성가족부가 남편·아내 양가의 비대칭적 호칭 체계를 대칭적으로 정비하는 방안을 내놨다. 정비안에 따르면 남편 쪽의 ‘도련님’ ‘아가씨’를 ‘OO씨’ ‘동생(님)’으로, 아내 쪽의 ‘처남’ ‘처제’를 ‘처남님’ ‘처제님’으로 바꾸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런 내용이 전해지자 온라인에선 찬반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진작에 차별적 호칭을 바꿨어야 한다는 지지가 있는가 하면 수백년 이상 자리잡은 예절을 굳이 왜 바꾸려 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정부가 나서서 어떤 호칭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 데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처벌할 것이냐는 얘기다.
시대에 뒤처진 성차별적 호칭은 분명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양가를 존중하고 가족 간 친숙한 느낌을 살리는 표현을 개인들이 찾아 쓰는 것이다. 정비안은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고 한다. 이번 설 연휴에 우리 집에선 어떤 호칭을 쓸지 얘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