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용 칼럼

“내년 총선은 한·일전이 될 것”

박래용 2019. 7. 30. 11:25

드라마에서 연기와 실제는 다르다. 악역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직업으로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 실제로 악당인 건 아니다. 한데도 악역 연기자들은 실제로 나쁜 사람으로 오인받아 종종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연쇄살인마 역을 맡은 어느 배우는 마트에 장보러 갔다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한 적이 있다. 지나가던 시민에게 물세례를 받거나 욕을 들은 경우는 허다하다. 억울하겠지만, 그만큼 연기력이 뛰어난 때문이겠다.

 

대한민국 정치판이란 대하 드라마에서 악역은 제1야당이 맡고 있다. 일본이 한국에 무역보복 조치를 취하자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서는 왜 그런 판결을 내렸느냐고 한다. 황교안 대표는 정부 대응을 구한말 쇄국정책과 같다고 했는데, 그 쇄국정책이란 반도체 소재·부품 핵심기술을 국산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해 대일 의존도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김문수는 “지금은 토착왜구가 아니라 토착빨갱이를 몰아내야 한다”고 이 와중에 또 색깔을 칠했다.

 

대안은 없다. 한국당은 ‘일본 경제보복 원인과 해법’이란 의원총회를 열었는데, 특강만 듣고 끝냈다. 정책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한·일전은 치킨 게임과 같다. 야당은 일본의 보복조치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일본이 조치를 취소할 수 있도록 어떤 강경 대응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부에 힘을 실어줬어야 한다. 그게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길이다. 그러나 3국 중재위안을 내놓은 일본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전쟁 초반 협상에 들어가는 건 굴욕 외교를 하라는 말이다. 시민들 사이에선 100년 전엔 나라가 넘어갔지만, 이젠 순순히 당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립운동은 못해도 불매운동은 하겠다고 한다. 외적이 침입하면 하던 정쟁도 중단하고 단합하여 함께 맞서는 것이 당연하다. 한데 한국당은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면 한심하다고 하고, 말을 하지 않으면 이 마당에 침묵이냐고 한다.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 처리조차 거부하고 있다.  

 

[시사 2판4판]신친일 (출처:경향신문 DB)

 

정치판 드라마를 지켜본 시민들은 한국당의 악역이 연기가 아니라 진짜 악당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문 대통령 지지율은 50%대로 치솟았고, 맨날 비판만 하는 한국당은 20% 아래로 추락했다. 황교안 대표 취임 후 반짝하던 상승세를 다 까먹고, 정부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비판과 견제는 야당의 책무지만, 그 선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아침 드라마에서 악역의 얼굴에 김치 싸대기를 치는 장면에 속 시원해했던 시민들은 지금 야당 얼굴에 싸대기를 치고 있다. 한국당은 정부·여당을 때렸는데, 멍은 자기들 얼굴에 들었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고 했다. 내가 먼저 산 다음에 상대를 잡으러 가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당은 남의 집 탄불을 놓고 뭐라 할 입장이 아니다. 사법개혁특위 위원장, 예결위원장, 사무총장 등 주요 국회직과 당직은 친박계가 꿰찼다. 각 상임위 간사도 친박계로 교체하려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어느 상임위원장은 자리를 못 내놓겠다고 버티다 정당 사상 유례없는 징계를 받았다. 이 당에서 막말은 흠도 아니다. ‘5·18 망언’ 3인방은 모두 이전 상태로 복귀했다. 충성경쟁에 나선 행동대원들은 막말을 사시미 칼처럼 휘두르지만, 당의 보스는 “그 말 그대로 이해해 달라”고 한다. 우리 애들이 주먹을 휘두르면 아무 말 말고 그냥 맞으라는 얘기다. 급기야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당, 우리공화당, 바른미래당으로 뿔뿔이 흩어진 보수세력이 빅텐트를 치고 반문재인 연대를 구축하자는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돌고 돌아 ‘도로 친박당’이요, ‘탄핵 연대’다. 혁신과 인적쇄신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신인 황교안은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는 실망감을 안겨줬고, 제1야당다운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고, 야당으로서 존재의 필요성을 각인시키지 못했다. 

 

드라마에서처럼 여기에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 참모들이 있다. 한국당은 지금보다 경제가 더 악화되면 야당이 유리할 것이라고 보고,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이길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사무총장을 지낸 김용태 의원은 “그건 대단한 착각”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참모는 조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정치는 이미지 싸움이다. 드라마에서 못된 시누이, 동네 깡패, 직장갑질 상사가 잘되는 경우는 없다. 한국당엔 친박에 친일 이미지까지 덧씌워져 있다. 그래서 내년 총선은 여야 대결이 아니라 한·일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민들은 ‘4·15 대첩(大捷)’을 기다리고 있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