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나
2018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취임 후 처음 맞은 ‘데드 크로스’다. 여권의 충격은 컸다. 청와대 비서실을 개편해 심기일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임종석 비서실장, 한병도 정무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교체했다. 당초 예정보다 서너 달 앞당긴 쇄신 인사였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 안팎의 최저치를 오르내리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범여권 득표율(47.3%)을 까먹은 지는 오래다. 대통령 지지율 40%는 심리적 저지선이다. 35%로 떨어지면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본다. 지지율 추락은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시민의 질책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14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무거운 표정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여권은 조국 사태로 등 돌린 민심을 돌려세우기 위해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개혁 대 반개혁’ 구도로 설정했다. 문 대통령은 조국 대신 검찰개혁을 직접 챙기고 나섰다. 예정에 없던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삼성·현대차 공장을 방문하는 등 경제행보도 부쩍 늘리고 있다. ‘검찰개혁’과 ‘경제’ 투트랙으로 민심을 추스르겠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21일 “저부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하나 빠진 게 있다. 자성과 책임, 쇄신이다. 여론조사에서 조국 사퇴에 대해 응답자 64%가 ‘잘된 일’이라고 했다. 이런 민심을 따르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두 달간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이제 ‘조국 정국’을 매듭짓고 새 출발을 하자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는 없다.
지난 1월 출범한 청와대 2기 참모진은 친문 인사를 전진 배치한 친정체제 강화였다.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의 생각을 시민에게 전하고, 시민의 뜻을 대통령에게 전달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역할이다. 지금 청와대 참모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민주당 내에선 “정의감만 있고, 정무감은 제로”란 말이 공공연하다. 민심과 동떨어진 태도는 안 그래도 하향 추세인 국정 지지율을 급락시킨 책임이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역대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김대중 20회, 노무현 45회, 이명박 9회, 박근혜 7회였다. 문 대통령은 2년 반 동안 3차례 했다. 대통령이 언론을 피하는 것인지 참모들이 가로막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유야 여하튼 시민의 눈엔 자신 없는 대통령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문 대통령은 11월8일 임기 반환점을 돈다. 청와대는 이를 맞아 기자회견 같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이낙연 총리를 비롯한 총선 출마용 내각 개편은 연말로 미뤄졌다. 이번엔 공석 중인 법무부 장관 한 자리를 채우는 원포인트 개각만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쇄신 차원의 개편은 1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오판이거나 외면이거나 둘 중 하나다.
지금은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의 수십년 적대적 공생 관계에 미래세대의 도전이 시작된 역사적 전환기라 할 수 있다. 신구 세력의 갈등은 동시에 여러 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이는 ‘내 편 아니면 네 편’이란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상이다. 혁명적 시기를 맞아 국정을 이끌어 가려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정좌표를 설정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인적·제도적 쇄신이 필요하다. 지지층 결집이나 친정체제 강화 같은 낡은 방식으로는 새 시대에 걸맞은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당의 중진의원은 “인의 장막이 쳐진 느낌”이라고 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은 “청와대 안에 노(NO)라고 할 수 있는 이질적인 참모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간 문 대통령의 3대 국정동력은 소통, 적폐청산, 남북관계로 압축됐다. 적폐청산은 적폐의 몸통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면서 사실상 마무리됐다. 남북관계는 난항이다. 앞으로 깜짝 반전이 있다 해도 효과는 종전만 못할 것이다. 남은 건 소통과 개혁뿐이다. 쇄신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권 출범 이후 박수 받는 인사가 언제 있었던지 기억도 가물하다. 대통령은 출범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은 모두 찬성할 때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초일류 기업들이 ‘레드 팀’을 만든 이유는 가감 없이 직언하는 조언자가 있어야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통령 곁에 늘 반대 의견을 내는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한 때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