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시계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총회장이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연수원 ‘평화의 궁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총회장의 손목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가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뒤 기념 시계를 만들었다. 제작비가 저렴하고 만족도가 높아 선물로는 시계만 한 게 없다고 한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과 친필 사인이 새겨진 손목시계가 처음 제작된 건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 때다. 손목시계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 신분과 권력의 상징이란 의미까지 더해져 자기 과시용으로 인기 최고였다. 대통령 시계 원가는 4만원 안팎이지만 중고 사이트에선 수십만원에 거래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뒷면에 자신의 좌우명인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적힌 시계를 만들었는데 1992년 대선 때부터 뿌려 금권선거 논란을 자초했다. 얼마나 많이 나눠 줬던지 “YS 시계 하나 차지 못하면 팔불출”이란 말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 시계는 친문 지지층 사이에선 일명 ‘이니 시계’라 불린다. 문재인 관련 상품을 뜻하는 ‘이니템’ 중에서도 가장 구하기 어려운 물건으로 꼽힌다. 청와대는 2018년 한·불 우정콘서트에 방탄소년단(BTS)을 출연시켰는데, 비용 1억~2억원 대신 ‘이니 시계’로 퉁쳤다고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이 밝힌 바 있다.
대통령 시계는 권력자와의 친분 과시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참여정부 때는 ‘청와대 사정팀 국장’을 사칭, 청와대 문양이 새겨진 시계를 돌리며 사기행각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청와대 기념품 가게에서 ‘청와대 시계’ 판매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위조 시계임을 알면서도 진짜인 것처럼 중고거래했다면 위조 공기호·공서명 행사죄에 해당돼 처벌받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때는 서명과 휘장을 위조한 가짜 시계를 만든 시계 수리업자에게 징역 6월이 선고됐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2일 기자회견에 차고 나온 시계가 장안의 화제다. 엎드려 절을 하면서 금장을 한 번쩍번쩍한 손목시계가 드러났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이름이 새겨 있었다. 시계가 진짜냐, 진짜라면 누구한테 받은 거냐는 등 온갖 억측들이 쏟아졌다. 친박 인사들은 “100% 가짜”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임기 중 이 총회장이 찬 것 같은 시계는 만든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하필 저 시계를 차고 나왔을까 궁금해하고 있다. 혹을 떼기는커녕 신천지발 혼란이 더 커진 느낌이다.
<박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