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아침을 열며
[아침을 열며] ‘박연차 게이트’ 관전법
박래용
2009. 5. 10. 10:27
박연차 게이트에 정치 수사란 꼬리표가 붙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정권은 박연차 사건 전체의 줄거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상황에서 몇부작이 될지 모를 대하극을 목하 상영 중이다. ‘박연차 극(劇)’을 이해하려면 기획→대본→연출 과정을 리뷰하는 것이 필요하다.
# 지난해 7월 정권이 바뀌자 국세청은 중견업체인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조사는 재계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직접 맡았다. 재벌도 아닌 620위권 규모의 지방 신발공장을 털기 위해 국세청 최정예 부서인 조사4국이 나선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률 청장이 새 정부에 맞추기 위해 더욱 강하게 조사를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결과는 국세청장이 직접 챙겨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했다고 한다. 그사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이종찬 민정수석과 추부길 비서관은 조용히 청와대에서 짐보따리를 쌌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률 청장이 새 정부에 맞추기 위해 더욱 강하게 조사를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결과는 국세청장이 직접 챙겨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했다고 한다. 그사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이종찬 민정수석과 추부길 비서관은 조용히 청와대에서 짐보따리를 쌌다.
한상률은 박연차 수사의 일등공신이다. 소망대로 유임을 꿈꿀 만했다. 하지만 여권내 기류는 달랐다. 국정원장(김성호), 검찰총장(임채진), 경찰청장(어청수), 국세청장(한상률)이 모두 노 정부 사람들인데 우리에게 그렇게 사람이 없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어떤 여권 인사는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차라리 내가 하겠다”며 분노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결국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그림 상납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툭 보도됐다. 지난해 12월 말 경주에서 여권 인사들과 골프를 한 사실도 불거졌다.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는 결국 사임했다. “정치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일 좀 해보려다 이렇게 됐다”는 게 사퇴의 변이다. 토사구팽이다.
어떤 여권 인사는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차라리 내가 하겠다”며 분노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결국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그림 상납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툭 보도됐다. 지난해 12월 말 경주에서 여권 인사들과 골프를 한 사실도 불거졌다.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는 결국 사임했다. “정치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일 좀 해보려다 이렇게 됐다”는 게 사퇴의 변이다. 토사구팽이다.
재계 620위 신발공장 털기
한상률은 수사가 본격화되려던 3월 미국으로 돌연 출국했다. 그림 상납의혹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국세청장 자리는 그 후 넉달째 공석이다. 국세청장 자리가 이렇게 장기간 비어 있기는 건국 이후 처음이다. 유례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까닭이 있을 것이다. 몇명 더 나가야 할 간부들이 있기 때문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정권은 설명해주지 않고 있다.
# 그해 11월 국세청은 박연차를 탈탈 털어 검찰에 고발했다. 242억원 탈세 혐의다. 사건은 검찰총장의 직할부대인 대검 중수부에 맡겨졌다. 거기에도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국세청 고발은 연 수백건이 넘지만 대검 중수부가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검찰은 즉각 노건평씨를 구속했다. 경질설이 나돌던 임채진 총장은 고비를 넘겼다.
검찰은 올 1월 인사에서 검사 5명이던 대검 중수부 인력을 검사 13명으로 보강했다. 난데없이 중수부 검사를 3배 가까이 늘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검찰은 이미 노무현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작정한 것이다. 이후 넉 달 동안 중수부 검사와 베테랑 수사관들이 노무현의 돈 주머니를 이잡듯 뒤지고 있다.
수사는 생물이라고 한다. 수사를 하다보면 예상치 못했던 사실이 발견돼 새로운 수사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으로, 그만큼 수사는 가변적이란 뜻이다. 큰 틀이 짜인 상태에서 그런 변수는 지엽적이다. 이미 수십명의 리스트가 나온 마당이다. 정권은 리스트를 손에 쥐고 있다. 누구를 빼고 넣고는 검찰 마음이다. 천신일은 노무현과 함께 처리하겠다는 것 같다. 여권 내에선 “상대의 몸통(노무현)을 취했는데 우리는 팔(천신일) 하나는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파다하다.
5년마다 죽은 권력 물어뜯기
# 참여정부 시절 박연차 회장이 노무현과 그 주변 인사들의 최대 후원자였던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국세청과 검찰은 박 회장과 세 딸, 사위, 아들, 주변 인물들을 1년 가까이 털어 기어코 노무현과 측근들을 옭아매는 데 성공했다. 야당이 이를 정치보복이라 하고 ‘기축사화(己丑士禍)로 부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모양이다.
노무현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가 알았든 몰랐든, 구속되든 불구속되든 노무현은 이미 국민정서상 구치소에 수감된 것과 진배없다. 그는 매장됐고, 아마 관을 뜯고 다시 세상에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요, 그것이 우리 검찰과 국세청이 말하는 정의라면 할 말이 없다. 정권이 바뀌고 난 뒤 죽은 권력을 물어뜯는 것이 ‘정도 세정’이고 ‘선진 검찰’인지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