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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환상적인 검찰총장”

박래용 2009. 8. 16. 10:29
‘법원의 토지관할은 범죄지, 피고인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로 한다.’(형 사소송법 제4조)

‘재판소의 토지관할은 범죄지 또는 피고인의 주소, 거소나 현재지에 의한다.’(일본 형사소송법 제2조)

형사소송법을 펼치면 맨 첫머리에 나오는 제1장 ‘법원의 관할’ 부분이다. 양국의 법이 토씨만 빼고 똑같다. 형사소송법 99%가 이렇다. 도로교통법·경범죄처벌법 같은 특별법은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8년 창설된 한국의 검찰조직과 제도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 것을 베끼다시피 했다. 이란성 쌍둥이인 셈이다. 똑같은 조직, 똑같은 제도, 똑같은 법을 갖고 있지만 한·일 양국 국민들이 검찰에 대해 갖는 신뢰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검찰이 이처럼 상이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907년 메이지 시대 일본의 최대 제당회사인 대일본제당이 국회의원들을 매수하기 위해 비자금을 뿌린 ‘니토(日糖)사건’은 일본 검찰사에 특수수사 1호로 기록되는 사건이다. 수사 대상이 국회의원 20여명을 넘어서자 총리 가쓰라가 검사총장(우리의 검찰총장) 마쓰무로를 불러 수사 중단압력을 넣었다.

“뿔을 바로잡으려고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를 범하면 안된다.”

검사총장이 답했다.

“실은 소를 죽여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소는 악하기 때문입니다.”

우간다서 보낸 축하메시지 

일본 검찰의 위상 강화는 정치적 사건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뤄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죽은 권력이 아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다. 검찰 창설 후 120년 동안 일본은 검찰 수사로 5차례나 내각이 붕괴됐을 정도다. 집권 내각의 현직 총리(쇼덴사건·아시다 총리)를 구속기소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수사에 관한 한 검찰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은퇴한 검찰 고위간부는 “국민들은 수만건의 일반 형사사건을 적절하게 처리했는지보다 권력형 부패 정치인 1명의 구속 여부로 검찰을 평가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조직은 요동을 친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선 TK(대구·경북)가 요직을 싹쓸이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PK(부산·경남)가, 김대중 정부에선 호남 인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사정의 도마에 오른 공직자 1위가 TK 출신이란 통계도 나와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PK가 주요 대상이었다.

‘정권 초기엔 중수부가 바쁘고, 정권 말기엔 공안부가 바빠진다’는 검사들의 우스갯소리는 빈말이 아니다. 5년 주기로 사정(司正)을 빙자한 보복성 응징은 그치지 않고 되풀이된다. 각 분야 주도세력의 교체를 통해 집권기반을 굳히려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다. 정치적 중립이나 수사권 독립이란 말은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피차 귀에 담아 두지 않는다. 

일본 검찰의 장점은 조직의 안정, 탈정치 문화, 적절한 견제 장치 등으로 요약된다. 일본 검찰총장은 서열 2위 도쿄고검장이 맡는 게 관례다. 고검은 수사를 하지 않는다. 수사를 하지 않으니 다음 총장이 될 사람은 정치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도쿄지검장은 수사는 할 수 있지만 대신 그 자리를 끝으로 물러나야 한다.

국제적인 평가 받는날 왔으면

일본은 검사 출신이 정계로 달려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 우리는 18대 국회의원 중 22명이 검사 출신이다. 정당인을 제외하고는 출신 직업별 1위다. 

장황하게 일본 검찰을 상찬해서 좀 뭐하지만 반일보다 극일(克日)은 더 중요하다. 우리 검찰 경쟁력은 한참 멀었다는 얘기다. 

오늘 또 한 번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총장 후보자만 닦달한다고 검찰의 여러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성 싶지 않다. 와중에 검찰은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세계 각국에서 “환상적인 소식”이라고 보내왔다는 총장 지명 축하메시지 수십통을 공개했다. 이 중엔 우간다 검찰도 있다. 한마디로 전 지구촌의 검사들이 김준규 후보자를 열광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낯 간지럽다. 모쪼록 검찰조직도 그렇게 국제적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