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경향의 눈
[경향의 눈] 청소 아주머니와 고려대정신
박래용
2009. 11. 9. 10:34
설마 했더니 사실이었다. 고려대에서 청소 아주머니들이 청소하면서 나오는 이면지나 신문, 종이상자, 버려진 책을 모아 팔아오던 것을 앞으로 못하게 했다는 보도를 보고 반신반의했다.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걷힌 것을 팔면 1인당 2만~3만원 정도. 아주머니들은 이걸로 쌀을 사 아침과 점심 하루 두 끼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 그 쥐꼬리만한 부수입을 앞으로는 업체가 직접 챙기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학교는 뒷전에서 모르쇠다.
믿겨지지 않았다.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각박할까 싶었다. 학교를 찾아가봤다. 초겨울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지만 캠퍼스는 활기차고 윤기가 흘러 보였다.
곳곳에 LG-포스코 경영관, CJ인터내셔널하우스, 아산 이학관 등 기업 기부금으로 지어진 건물이 즐비했다. 100주년 기념관은 삼성이 낸 400억원으로 지은 건물이다. LG 창업고문, 피죤 회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하나은행장, 삼성그룹 부회장의 이름을 표시한 강의실과 세미나실이 보였다. 의자와 책상에도 모모 하는 기업인들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바른 교육으로 큰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는 게 기부 취지다.
곳곳에 LG-포스코 경영관, CJ인터내셔널하우스, 아산 이학관 등 기업 기부금으로 지어진 건물이 즐비했다. 100주년 기념관은 삼성이 낸 400억원으로 지은 건물이다. LG 창업고문, 피죤 회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하나은행장, 삼성그룹 부회장의 이름을 표시한 강의실과 세미나실이 보였다. 의자와 책상에도 모모 하는 기업인들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바른 교육으로 큰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는 게 기부 취지다.
학교는 뒷전에서 ‘모르쇠’ 일관
캠퍼스 한 구석 학생회관 1층 끝 방에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청소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알아 보니 내용은 이랬다. 학교는 올 3월 폐기물 관리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교내 모든 쓰레기를 처리하되 폐지 같은 재활용품 판매대금까지 업체가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업체는 “등록금 동결로 용역비가 줄어 우리도 적자이니 재활용품에 손대지 말라”고 청소 용역업체에 통보했다.
학교 청소원은 50~70대 아주머니 210명. 매일 새벽 첫 차를 타고 일하는 곳으로 달려오는 그들의 개개의 사연은 묻지 않아도 기구할 것이다. 주 6일 토요일까지 일하고 한 달 97만원을 가져간다. 구겨진 종이를 펴고, 물 묻은 신문지를 말려 흰 종이는 ㎏당 170원, 신문지 같은 누런 종이는 100원을 받는다. 폐기물업체는 재활용품에 손대지 않는 조건으로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월 1만원씩을 주겠다고 했다가 1만5000원을 요구하자 없었던 일로 했다고 한다.
이런 옥신각신하는 과정에 학교는 없었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아주머니들에게 폐지 값으로 1만원씩을 더 주면 한 달에 210만원이 든다. 학교가 그 돈을 보전해준다면 청소원들과 업체 간의 ‘폐지 전쟁’은 진작에 종지부를 찍었을 것이다. 고려대 올해 예산은 5963억원. 지난 한 해 기부금만 352억여원을 거둬들인 부자 학교다.
21년째 일해온 일흔살 최경순 할머니는 새벽 4시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출근해 해질 무렵 돌아간다고 했다. 최 할머니는 “폐지보다 못하게 취급받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하다”고 했다.
비즈니스 논리라면 폐기물업체와 청소원의 문제일 뿐 학교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학교 측은 “업체와 그렇게 계약을 했으니 학교가 나서 조율하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학교 관계자는 “쓰레기도 엄연히 학교의 재산”이라고 했다. 쓰레기가 누구 거냐는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 아웃소싱을 한 이유는 비용절감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돈에 매달리는 태도에 분노감
하지만 사람 사는 이치가 그렇게 한두 푼 이문만으로 엮이지는 않는다. 비용 절감이 먹이사슬의 맨 아래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전가되는 현실도 고약하지만, 이런 일이 상아탑에서 벌어졌다는게 더 놀랍다.
십시일반(十匙一飯),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요체로 하는 부자의 도리를 꺼낼 것도 없이 학교는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곳이다. 최소한 학교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정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향신문이 누차 ‘벼룩의 간을 빼먹는 폐지 전쟁’에 관심을 갖고 보도하는 이유다.
십시일반(十匙一飯),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요체로 하는 부자의 도리를 꺼낼 것도 없이 학교는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곳이다. 최소한 학교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정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향신문이 누차 ‘벼룩의 간을 빼먹는 폐지 전쟁’에 관심을 갖고 보도하는 이유다.
이기수 총장은 새로 고대생이 된 김연아 선수가 세계대회를 우승하자 “고대 정신을 집어넣은 결과”라며 환호작약한 바 있다. 1년에 한두 번 학교에 나올까 말까 하는 김 선수보다 매일 학교를 쓸고 닦는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고대 정신은 아니더라도 폐지 값은 돌려줘야 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