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여적
[여적] 고장의 명예
박래용
2009. 11. 10. 10:35
조선 시대 과거시험은 식년시와 증광시, 별시, 알성시가 있었다. 큰 경사가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치러진 다른 시험과 달리 식년시는 3년에 한번씩 열리는 정통 국가고시다. 소과·문과·무과·잡과로 나눠지는 시험은 대략 30여명씩을 뽑았는데 과거를 볼 때면 전국의 유생 10만~20만명이 몰려들었다고 하니 경쟁률이 수천대 1쯤 됐다.
당시에도 급제자는 ‘서울 쏠림 현상’이 뚜렷했다. 2486명 문과 합격자 중 한양 거주자가 65.2%, 무과도 47.6%로 단연 많았다. 지방은 한수 이북에선 평북 영변·정주 지역이, 이남에선 경북 안동·영주·봉화 지역에서 합격자를 최다 배출했다. 가문별로는 전주 이씨(784명), 안동 권씨(357명), 파평 윤씨(334명), 청주 한씨(271명), 밀양 박씨(256명) 순이다.
과거 급제는 고장의 영광이었으니 급제자가 귀향하는 날 모든 고을 사람들이 나와 환영하고 수령이 주연을 베풀며 축하해주는 것은 어느 지역이나 한 가지였다. ‘로열 패밀리’ 다음으로 최다 급제자를 낸 안동 사람들은 초면 인사를 나눌 때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고개를 번쩍 쳐들고 “추로지향 안동이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추로지향(鄒魯之鄕)은 맹자가 태어난 고을 추(鄒)와 공자가 태어난 노(魯)를 합친 말로 학식이 높은 고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만큼 고향에 자부심을 가졌다는 얘기다.
충남 금산군이 명문대 진학의 꿈을 심어 준다며 17억원을 들여 시내 한가운데 400m 도로변 양쪽에 서울대 정문 등 국내외 32개 대학의 교문이나 상징물을 줄줄이 세웠다고 한다. 옆에는 ‘큰 꿈을 갖자’는 글과 함께 연도별 서울대 입학생과 해당 고교 이름을 돌에 새겨놓고 ‘교육특화거리’라 명명했다. “대학 상징물을 만들어놓으면 학생들이 더 좋은 대학을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게 군청 측의 설명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을 늘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역·학교별 학력 서열화 정책의 파생물임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급기야 도심 한복판에 대학 모형까지 세워놓고 학벌 만능을 부채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 실소를 넘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지역 인재는 투자를 늘리고 다양한 교육정책을 통해 키워나가야지, 장승 세워놓고 고사 지내는 식으로 만들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