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향과의 만남]“새해엔 문화시정 역점…시장 한번 더 하고 싶어”
박래용
2007. 12. 13. 10:02
지난해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 시청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동안 공무원들이 내놓은 ‘창의(創意) 제안’만 4만5000건 정도 쏟아졌다. 오시장은 “(서울시 공무원들이) 이젠 일하는 척은 한다”고 했다. 차기 대권도전의 뜻을 묻자 “시장 한번 더 하고 싶다”고 답했다. 박래용 전국부장이 오시장을 12일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만났다.
-서울시에 질서유지 권한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왜 나옵니까.
“지난 여름에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노점 디자인 표준안을 만들어서 전시회를 하려는데 노점상들이 이걸 때려부숴서 전시회를 못하게 됐습니다. 당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이래서는 일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방자치를 하려면 최소한의 질서유지 권한은 지자체가 가져야 합니다. 쉬운 예로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이 노점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생계와 연관된 문제라 함부로 손 대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내버려두면 한없이 늘어나고 기업화되고 자릿세를 받고 서로 권리금까지 받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됩니다. 지자체가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우회적인 방법만 가능한 실정입니다. 최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더니 ‘나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최소한의 질서유지 권한은 지자체가 가져야 한다고 했더니 ‘맞는 얘기’라고 공감했습니다.”
“특별사법경찰관 형태는 지금도 일부 식품위생 등 분야에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경찰에 의지하고 있지만 이제는 질서유지 권한도 최소한은 실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청 앞에서 농성을 하는 집단 민원의 경우 참다참다 안되면 경찰에 연락해서 사법 절차를 밟는데 그래선 안됩니다. 자치경찰처럼 지자체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명박 시장 하면 ‘청계천’식으로 전임 시장들은 떠오르는 성과가 있는데 오시장의 상징적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아직까지는 기초적인 시스템, 인프라를 만드는 단계였습니다. 인사시스템을 손보고 평가시스템을 만들고 민원시스템을 해당 실·국에서 즉시 대응하도록 했습니다. 교육시스템을 개편해 실력 있는 사람이 승진하는 체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다 ‘창의 시정’의 기초적인 ‘툴(tool·도구)’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제 겨우 시스템을 완성하고 하반기부터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초기단계일 뿐입니다. 외부에서 큰 평가를 받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5~10년 뒤에 ‘그때 그 시장이 만든 시스템으로 일이 이렇게 돌아가고 경쟁력 있는 지자체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지휘관은 취임하면 뭘 뜯어고치고 새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오시장이 그리는 변화의 최종 목표는 무엇입니까.
“어제 방식대로 하면 오늘 근질근질해서 직성이 안풀리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시스템이 있는 것일까. 그건 ‘유토피아’ 아니냐고 했더니 “거의 유토피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며 웃었다. 그는 “모든 최고경영자가 이상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내 목표”라고 부연했다.
-직원들이 진짜 일을 하고 있는 겁니까, 하는 척 하는 겁니까.
“이제 하는 척은 합니다. 처음에는 ‘또 시작이구나’ 하는 시니컬한 분위기였습니다. 지금은 ‘하긴 해야겠구나’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간부들도 ‘하면 좋다. 해야 한다’는 분위기 정도가 됐습니다. 적어도 수치를 보면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공무원들이 직접 4만5000건 정도를 제안했습니다. 그 중 수백개가 시행 중이고, 수십개가 안착됐습니다.”
-지난 1년반을 자체 평가해주십시오.
“대체로 서울시 직원들의 자질과 열정에 만족합니다. 뭘 하려고 제안했을 때 70~80%는 따라옵니다. 올 한해는 창의시정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이를 체질화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제 시동은 걸었다고 보고 계속 달려가도록 관성이 붙게 하겠습니다.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창의제안을 내놓고 업무역량을 높여가는 학습 유전자를 조직 내에 안착시키겠습니다.”
-시민들은 ‘청계천’이나 ‘버스중앙차로’ 등 눈에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기 십상입니다. 공무원들의 역량이 높아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평가해주겠습니까.
“물론 시민들이 알아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도 정치인이니까. 그러나 ‘오세훈법’(새 정치자금법)을 만들 때도 누가 알아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의미있는 결과는 자기 스스로 열정이 끓어나와서 분출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전 시장이 청계천 복원을 중요하다고 여겼다면 나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것입니다. 그래야 청계천 같은 사업이 10개든, 20개든 나올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오세훈법’을 놓고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다고 해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얼마나 불만이 많은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난 큰 틀에서 줄기만 잡았다. 도매금으로 다 내가 했다고 해서 억울한 부분도 있다”며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 원하든, 원치 않든 유력한 대권 후보 중 한명으로 거론될 텐데.
“많은 사람들이 ‘기회는 왔을 때 잡으라’며 차기 대권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저는 귀에 안 들어옵니다. 서울시가 성공의 모델을 만들고 직원들 정신상태를 바꿔놓는 사례를 만들어냄으로써 국가 경영에 동력을 만드는 것이 국가경영보다 중요합니다.
4년 만에 되면 좋은데 1년반 해보니 이 시스템으로 승승장구하는 팀장·과장·국장이 나와야 안착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장) 임기 한 번으로는 무리고 두 번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꼭 한번 더하고 싶습니다.”
-취임 이후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는데 특히 벤치마킹할 만한 도시를 꼽는다면.
“영국 런던입니다. 한때 쇠락했다가 재도약한 이미지와 그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 연원에 전부 ‘대처’(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디자인하면 런던을 떠올리고 금융도 런던이 뉴욕을 앞섰습니다. 그 씨앗과 기초를 대처가 만들었습니다.
요즘 많이 쓰는 ‘디자인 오어 리자인(design or resign·첫 각의에서 한 말. 디자인하든지 아니면 그만두라는 뜻)’도 10년전 대처가 한 말입니다. 디자인을 하려면 창의적인 인력이 있어야 한다며 교육도 대처가 바꿨고 그 인력들이 지금의 런던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처가 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웃음) 이론적인 건 다 알고 있었지만 확인하러 갔던 것입니다. 현실에 적용된 모습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시장 취임후 유독 디자인·문화 같은 소프트웨어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게 먹고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이 좋은 문화자산을 가졌음에도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제는 문화를 상품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화를 삶의 질, 기업·국가 경쟁력으로 어떻게 연관시킬 것인가의 연결 고리에 디자인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디자인에서 앞서 있지 않습니다. 디자인을 끌어올려야 돈과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다음 정부가 세계 7위권을 하겠다는데 디자인 아니면 못 들어간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컬처노믹스’라는 비전 체계로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기전세주택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이 크지만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물량이 적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내년부터 SH공사가 공영개발하는 공동주택의 일반분양분 전량을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하게 됩니다.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에게 ‘주공이나 토공에서 10만호 정도만 보급해도 주택가격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제안도 했습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조만간 장기전세주택이 확대 시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심 혼잡통행료 확대방안을 놓고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한데요.
“혼잡통행료 확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도입에 앞서 충분한 논의와 합의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입에 앞서 버스와 택시·경전철 등 다른 대중교통 수단을 완비한 후에 시민들에게 승용차를 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순서라고 봅니다.”
-새해에 도드라지는 서울시 정책 방향은 무엇입니까.
“올해가 창의시정이었다면 내년엔 문화시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뮤지컬 및 대중음악당, 야외공연장 등 세계적 수준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2009년에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50~80곳의 대도시 시장들이 서울에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기후변화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할 일이 많습니다.
올해 55억원이었던 해외홍보 예산을 내년엔 367억원으로 늘렸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서울로 오세요’라고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서울관광공사도 만들어서 본격적인 세일즈에 나서게 됩니다. 말레이시아는 이렇게 10년전부터 광고에 썼고 그래서 관광대국이 됐습니다.”
-의욕적으로 일하는 것 같습니다.
“(웃음)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서 의욕적으로 하는 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정리 한대광·김기범|사진 우철훈기자>
▲ 오세훈은 누구?
오세훈 서울시장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일고와 고려대 법학과,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91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법률 상담을 해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96년부터는 환경운동연합에서 법률위원장과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서울 강남을)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4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며 미래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았다. 2004년에는 일명 ‘오세훈법’이라고 불리는 정치자금법 및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5·6공 출신 인사들에 대한 물갈이를 주장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장 선거 출마 당시 정계 은퇴를 번복했다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