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경향의 눈
[경향의 눈] 46명 해군… 왜 돌아오지 않는가
박래용
2010. 3. 29. 10:45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고를 보도하는 TV 뉴스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화면 속에서는 실종 군인 가족들이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를 찾았다가 정문에서 통제당하고 있었다. 분노한 가족들이 정문을 막아선 군인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부대 내로 들어오자 급하게 달려온 헌병들이 이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위협했다.
실종 군인의 가족들에게 총을 겨누며 막는 통제….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군의 원시적 위기관리 능력을 이보다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없는 것 같다. 아들이, 동생이, 손자가 탄 군함이 침몰했다는데도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채 무작정 달려온 가족들이다. 해군 참모총장이나 함대 사령관이 손을 맞잡고 뺨의 눈물을 닦아줘도 슬픔과 충격이 가시지 않을 판에 이들을 ‘무단침입’으로 간주한 군은 어느 나라 군대인가.
미군의 사망·실종자 공식 성명은 해당 군인 가족들에 대한 통보가 끝난 뒤 발표되는 게 원칙이다. 국방부도, 백악관도 마찬가지다. 이를 놓고 시비를 거는 언론도 없다. 비보(悲報)를 누구보다 직계 가족에게 먼저 알리는 것은 자식을 군에 맡긴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이 부대진입을 막는 병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분노한 가족들 위협하는 헌병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군의 대응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이런 식이다. 도대체 정부와 군에 기초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고 원인은 선체를 인양해봐야 알겠다고 한다.
첨단 장비로 무장했다는 해군이 배가 두 동강이 난 채 가라앉았는데 원인을 모르겠다니 웃어야 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전시(戰時)였다면 침몰 원인을 알게 될 때는 전쟁이 끝난 뒤일 것이다. 이런 군 때문에 국민은 앞으로 두달여 동안은 이 말에 휩쓸리고 저 말에 떠내려가며 속을 새카맣게 태울 수밖에 없게 됐다.
첨단 장비로 무장했다는 해군이 배가 두 동강이 난 채 가라앉았는데 원인을 모르겠다니 웃어야 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전시(戰時)였다면 침몰 원인을 알게 될 때는 전쟁이 끝난 뒤일 것이다. 이런 군 때문에 국민은 앞으로 두달여 동안은 이 말에 휩쓸리고 저 말에 떠내려가며 속을 새카맣게 태울 수밖에 없게 됐다.
허둥댄 구조작업은 더 어처구니없다. 생존자들은 모두 해경과 민간 어업선이 구조했다. 해군은 구명정도 없는 함정을 출동시켰다가 발만 동동 구른 채 바다에서 서치라이트만 비추고 있었다는 증언에는 그만 귀를 막고 싶다. 함정이 가라앉을 때는 정전 때문에 통신까지 끊겨 휴대폰을 사용했다니 이만저만 문제가 아니다.
군의 미숙한 초기 대응은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해군의 초동대응은 잘됐다”고 평가했다. 지하벙커에서 4차례나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갖고 한 말이다.
누구의, 무슨 보고를 근거로 이런 ‘칭찬’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북한 개입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하고, 전 공무원 비상 대기령의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국민들은 정보에 목마르지만 모든 것이 안갯속에 가려진 채 나흘째 같은 말만 듣고 있다.
누구의, 무슨 보고를 근거로 이런 ‘칭찬’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북한 개입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하고, 전 공무원 비상 대기령의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국민들은 정보에 목마르지만 모든 것이 안갯속에 가려진 채 나흘째 같은 말만 듣고 있다.
군인은 전투에서 언제든 죽거나 다칠 수 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에서도 위험은 상존해 있다. 국가는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유사시 여의치 않았다면 이들과 가족의 명예라도 존중해줘야 한다.
1965년 남베트남 중부 안케에서 벌어진 전투는 미군과 북베트남 정규군이 치른 최초의 전면전이다. 미군 제7기갑부대 1대대장 무어 중령은 전투경험이 전무한 395명의 부하들과 함께 72시간의 극한 전투를 벌인 끝에 월맹군의 포위를 뚫고 일부 생환했다. 그는 파병 출정식에서 “내가 맨 먼저 전장에 내릴 것이고, 맨 마지막에 떠날 것이다”라고 약속했고, 그 말은 지켜졌다. 산 자든 죽은 자든 그가 뒤에 두고 온 장병은 없었다. 이 이야기는 2002년 영화 <위 워 솔저스>로 만들어졌다.
1965년 남베트남 중부 안케에서 벌어진 전투는 미군과 북베트남 정규군이 치른 최초의 전면전이다. 미군 제7기갑부대 1대대장 무어 중령은 전투경험이 전무한 395명의 부하들과 함께 72시간의 극한 전투를 벌인 끝에 월맹군의 포위를 뚫고 일부 생환했다. 그는 파병 출정식에서 “내가 맨 먼저 전장에 내릴 것이고, 맨 마지막에 떠날 것이다”라고 약속했고, 그 말은 지켜졌다. 산 자든 죽은 자든 그가 뒤에 두고 온 장병은 없었다. 이 이야기는 2002년 영화 <위 워 솔저스>로 만들어졌다.
정부는 위기관리 매뉴얼 있나
미국의 또 다른 전쟁 영웅 영화라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리더의 모습만큼은 음미할 만하다. 원작 소설 제목은 ‘우리는 한때 군인이자…청춘이었다(We were soldiers once…and young)’이다.
스물한살 서대호 하사, 스물두살 이상민 병장, 스물세살 이상희 병장…. 마흔 여섯명의 군인이자 청춘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있다.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한 대한민국의 꽃 같은 젊은이들이다.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다. 그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