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아침을 열며

[아침을 열며] 대통령은 알까

박래용 2007. 10. 21. 10:05
참여정부의 최대 무기는 입이다. 지난 5년간 논쟁은 참여정부의 키워드였다. 대통령은 말로써 반대 세력을 공격하고 국민들을 계몽하려 했다. 일러 노무현 대통령은 “나보고 말 줄이라고 하지 마라. 나는 온몸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2006년 12월28일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오찬 연설)

말뿐이 아니다. 참여정부는 행동으로 옮겼다. ‘국정브리핑’ ‘청와대브리핑’ ‘KTV’ ‘코리아플러스’ ‘야호 코리아’ 등 이른바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위한 정부매체들이 속속 생겨났다.
정책홍보를 강화한다고 각 부처의 기획관리관실과 공보관실을 통폐합해 정책홍보관리관실을 새로 만들도록 했다. 대국민 홍보는 모든 부처의 업무 1순위였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인 국정원장의 수다마저 ‘21세기형 정보기관의 새 모습’으로 치장됐다.
대통령이 앞장서니 부처의 장·차관은 물론이고 고위 공무원들도 앞다퉈 등장했다. 얼마나 많이 정책홍보에 나섰는지가 공직자 주요 평가사항 중 하나로 꼽혔다.

-정책홍보에 목매던 참여정부-

그런 참여정부에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향신문엔 ‘흐름과 소통’(매주 수요일)이라는 지상(紙上) 토론의 장이 있다. 1주일에 한번 꼴로 그 주의 최대 쟁점 이슈를 정한 뒤 관계 당사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이쪽 얘기도 들어보고, 저쪽 얘기도 들어보자는 뜻에서 마련된 지면이다. 문패 그대로 서로의 입장을 물처럼 풀어놓아 막힌 곳이 있으면 뚫고, 굽은 데가 있으면 바로 잡아보자는 것이다. 일종의 맞짱토론이다.

지난 주엔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모셔 정부의 2단계 국가균형발전정책을 놓고 서로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정책에 극력 반대하는 경기도민들이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1000만명 반대 서명운동에 들어간 터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두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김지사는 “언제 어디든 달려가겠다”고 했고, 이민원 신임 국가균형발전위원장도 참석에 동의했다. 날짜와 시간, 장소도 잡혔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위측은 토론을 사흘 앞두고 “정책에 찬성하는 지자체장도 한명 포함시켜달라. 그렇지 않으면 토론이 어렵겠다”고 사실상 취소를 통보해왔다. 한마디로 아군을 한 명 끼어넣어 2대 1 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자신이 없다고밖에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다. 애초 토론 초청자로 섭외했던 정책 총괄 사령탑격인 기획단장측의 말은 더 가관이다. “공무원 신분에서 곧 인사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토론에 나가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토론·취재 거부 ‘임기말 풍경’-

이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의약품 성분명 처방 쟁점을 놓고서는 국립의료원장과 의사협회 이사가 초청됐다. 어렵게 응한 국립의료원장은 일껏 토론을 다 끝내놓고 마지막 사진촬영 때 “공무원에겐 격이 있는데 토론 상대와는 격이 맞지 않는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국립의료원은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맡아온 국가기관이고 의협은 결사반대를 외치는 당사자들이다.

유류세 인하 논쟁이 한창일 때 토론에 나올 수 없다는 재경부 간부들의 말은 더 걸작이다. “우리는 인하 불가 입장에서 바뀔 게 없기 때문에 더이상 설명하고 말 것도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런 일들을 알고 있나 모르겠다. 온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정책을 놓고 정책의 생산자인 정부가 “할 얘기 없다”면 누구로부터 설명을 들으라는 것인가. 이제 끈 떨어진 참여정부를 수발하고 간병하겠다는 공무원은 없는 것 같다. 이율배반도 이럴 순 없다. 세상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엊그제만 하더라도 ‘개혁 정부’를 합창했던 그들이다.

요즘 참여정부는 기자들을 모든 청사에서 내쫓고 있다. 기자실 대못질의 본질은 취재제한이다. 모든 기자들을 관타나모 수용소같은 속칭 ‘통합브리핑룸’에 몰아넣고, 브리핑은 하고 싶을 때 하고 기자들은 어떤 공무원도 자의로 만날 수 없게 만들겠다는 무시무시한 조치다.
벌써 취재전화를 걸면 3곳, 4곳을 돌고돌아 다시 홍보관실로 돌아오더라는 일선 기자들의 체험담은 매일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공무원들만 이불속에서 웃고 있다. 이것이 참여정부 말년에 돌아가고 있는 공직사회의 꼴이다.

〈박래용 전국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