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들/아침을 열며
[아침을 열며]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박래용
2007. 6. 24. 10:11
만화가 강철수의 ‘내일 뉴스’라는 만화가 있었다. 한 청년이 고물상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낡은 라디오에서 내일 벌어질 뉴스가 좔좔좔 흘러나오고, 정말 다음날에는 그와 같은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내용이다. 그런 라디오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은 모든 이의 꿈이다. 동서양의 고금(古今)을 불문하고 점쟁이집에 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글로벌 트렌드의 풍향계를 자임하며 천하대세를 논하는 신문들이 한 귀퉁이에 ‘오늘의 운세’를 싣는 현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지에 목타는 본능을 얄팍하게 찍어낸 것이다.
‘문서를 계약할 때는 주의해야’ ‘장시간 기다린 보람이 있다’… 속는 줄 알면서도 자신의 띠를 짚어가며 깨알같은 글을 읽는 모습은 우습고 처연하다. ‘밥먹으면 배부르다’는 유의 한 줄 운세지만 고단한 일상에 뭔가 좋은 일이 없을까를 기대하는 소시민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 강남 땅값을 예견한 높은분들 -
그러나 세상엔 예지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는 것 같다. 1970년대 서울 강남개발 땐 남들 다 모르는 도시계획 발표 전 비상한 감각으로 땅을 사둔 사람들이 있었다. 거개가 정·관·재계의 모모하는 인사들이다.
일례로 70년대 초 서초동 법조타운 이전계획 발표 이전 일대 부동산 값은 평당 4000원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법조타운 이전 완료 후인 90년대 초엔 평당 4000만원으로 뛰어 올랐다. 1만배 이상이다. 쌀 한 가마니(80㎏)값이 72년 1만790원에서 92년엔 11만1833원으로 10배쯤 올랐으니 남는 장사도 이런 장사가 없다(통계청 자료 인용).
‘신동아’에 따르면 93년 첫 재산공개 당시 법조타운 주변 부동산 소유주 중에는 이명박·노재봉·김문기·나웅배·함석재·박세직·장석화·강수림 등 당시 여야의원, 전두환 전 대통령, 전전대통령의 장인 이규동씨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유독 고관대작들께서만 10년·20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을 같은 시기, 동시에 갖게 됐다는 것은 범인(凡人)들에겐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런 안목이 없는 사람들은 ‘8불출’이라고 불렸다. 부동산으로 돈 벌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 중의 바보로 여겨졌고,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한강의 강폭 만큼이나 벌어졌다. 그런 세월이 수십년 이어졌다.
하지만 예지자의 신통력도 거기까지인 것 같다. 그들은 몰랐던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질지. 땅값이 오른 만큼 도덕적 잣대도 감당할 수 없게 높아질 것이란 이치도 그들의 신통력엔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부동산 투기·병역 기피·탈세·파렴치 전과·이중 국적·위장 전입…너나 없이 다들 하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훗날 국민들이 절망하고 분노하고 용서하지 않으리란 예감은 없었던 것 같다.
- 도덕성 요구 높아질건 몰랐나 -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고위공직자 후보에 대한 부동산 관련 검증 잣대는 이렇다. ‘거주목적외 아파트 다수 보유, 취득목적이 불분명한 비연고지 토지의 과다 보유, 단기매매를 포함한 잦은 부동산 거래, 명의신탁, 위장전입 등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가리지 않고 수십 수백명의 총리 후보, 장·차관, 고위공직자들이 이 때문에 보따리를 쌌다. 어떤 대통령은 이를 두고 “미래로 가야 하기 때문에 미래의 기준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표현했다.
이런 변화는 국민들이 견인해낸 결과다. 고관대작들은 계속 꽁꽁 숨기고 싶었겠지만.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아직 대답은 유보다. 이것도 한철이다. 적수공권(赤手空拳), 없는 사람이 위세하는 때는 그나마 선거 때뿐이다. 검증이 더욱 철저하고 가혹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2002년 이맘때의 기억이다. 해인사에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나란히 섰다. 그 자리에서 조계종 종정이며 해인총림 방장인 법전 스님이 한 법어다. 스님이 꼭 검증위원장님 같으시다.
“지나간 어제를 알려고 해도 오늘을 보아야 하고, 오지 않은 내일을 알려고 해도 오늘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이란 어제의 열매요, 동시에 내일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박래용 전국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