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에서

물에 빠진 검찰

박래용 2012. 11. 7. 09:42

 

한명숙 수사는 그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청목회 입법로비 수사는 민간인 불법사찰 배후로 청와대가 의심된다는 의혹이 불거진 다음날 터졌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수사는 무상급식 서울시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슬그머니 흘러나왔다. 대검 중수부의 저축은행 수사는 중수부 폐지론이 제기되자 본격화됐다. 노건평 뭉칫돈은 파이시티 사건이 대통령 최측근으로 비화될 무렵 불쑥 튀어나왔다. 



정치검찰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치검찰은 정권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 데 수사를 활용한다. 맞불을 놓을 때가 있고, 불이 붙건 말건 줄창 연기만 피울 때도 있다. 이런 재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비(秘)파일에서 나온다. 검찰은 자체 수집한 정보 외에도 수사 중 망외(望外)로 튀어나온 부산물을 한가득 손에 쥐고 있다. 전국 검찰에서 올라온 이런 정보는 캐비닛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것으로 회를 칠지, 찜을 찔지, 탕을 끓일지는 주방장 맘대로다. 청와대와 여당, 검찰 수뇌부는 이 놈을 언제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즐거운 고심을 한다. 말귀 알아듣는 검사는 야권 수사엔 시뻘건 매운탕을 끓여내고, 권력형 비리 수사엔 멀건 국물을 내놓는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요소요소에 내 사람을 앉혀 놓으려는 이유가 다 있다. 



(경향신문DB)


 검찰이 친여 ‘따까리’ 노릇을 한 것은 이전 정부라고 없었던 건 아니다. 야권에 흠집 내고 여권에 꼬리 잘라주는 수사는 누대에 걸쳐 쌓여 이제 수사 매뉴얼처럼 됐다. 나중에 무죄가 나든 말든, 특검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무죄 검사도 꼬리 잘라준 검사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승승장구다. 



초임 검사가 3급 대우를 받느니, 차관급 검사장이 55명이라느니 등의 지적은 검찰의 외양, 하드웨어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검찰은 세계 최강의 검찰권을 자랑한다. 검사들의 눈엔 걸어다니는 모든 사람이 잠재적 피의자로 비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다. 누가 “우리 집 강아지가 오줌을 못 가려서 큰 일”이라고 하면 “한번 잡아 넣지”라고 받는 게 검사스러운 재담으로 통한다. 



검찰은 스스로의 권력을 돌아본 적도, 경계한 적도 없다. 법원은 독립성이 훼손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소장 법관들을 중심으로 개혁의 목소리를 높여 일탈하는 법원을 바로잡곤 했다. 검찰 내에서 먼저 개혁을 외치고 추동한 경우는 없었다. 과거사를 반성해본 적도 없다. 대신 수사권 조정, 공판중심제, 중수부 폐지처럼 누가 검찰 포켓에 손댄다는 얘기만 나오면 연판장을 돌리고 기수 모임을 갖고 수사를 보이콧하며 집단행동에 나선다. 개혁의 ‘개’ 자만 들려도 조직 전체가 깜짝 놀라고 손발을 뒤틀며 괴로워하는 게 흡사 경기(驚氣) 들린 모습이다. 



현직 대검 중수부장이 여당 후보의 검찰 개혁안에 “검찰 문을 닫으라는 얘기”라며 대놓고 반박한 것은 그 많은 삽화 중 하나다. 후보 캠프의 일개 아이디어를 놓고 어느 공무원이 기자들을 불러 공개적으로 치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게 검찰이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는 권력의 분산, 둘째는 상호 견제, 셋째는 인사이다. 개혁안이 거론될 때마다 검찰은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과 간섭으로부터 검찰을 지켜야 한다는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운다. 바꿔 말하면 권력 분산도 싫고, 견제 받는 것도 싫고, 인사도 우리끼리 하겠다는 것이다. 중립성 운운하지만 결국 기득권 옹호를 달리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정치검찰은 1%의 수사에서 비롯된다. 99%의 검사들은 어제도 오늘도 전국 검찰청사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피의자와 씨름하고 있다. 교활한 악당을 잡고, 단 한 명도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 검사들은 더 오랜 시간 자료를 뒤지고 증거를 쫓는다. 이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이나마라도 정의가 살아있는 것이다. 검찰 개혁은 불 밝혀 일하는 대다수 검사들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검찰 개혁 공약을 내놓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검찰을 지금 이대로 둘 순 없다는 것이 공동의 인식이다. 검찰로선 최대 위기요, 꼭 물에 빠진 사냥개 신세가 됐다. 루쉰(魯迅)은 1920년대 중국 봉건계급의 기득권을 혁파하려 한 개혁가다. 린위탕(林語堂)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이 페어플레이 정신이라고 말했다. 루쉰은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글에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도리어 개에게 물린다. 물에 빠진 개를 불쌍히 여기면 나중에 선량한 사람이 고생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적용하려면 적어도 물에 빠진 개들이 인간다워진 다음에 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공정하지 않는 상대에게 한 쪽만 페어플레이를 할 수는 없다. 이 후보나 저 후보나 공약이 비슷비슷해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참고하시라. 차기 대통령은 검찰을 어떻게 잡겠다는 건지, 이것 하나만 보고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