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들/정동탑

[정동탑] ‘판박이 신년사’ 이제 그만

2005년 새해 최대 화두는 ‘희망’인 것 같다. 너나없이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과 용기를 얘기했다.

궁금한 김에 1년 전인 2004년의 신년 메시지를 찾아봤다.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올해와 다름없이 여야 정치권은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했다. 그 전 해도, 그 전전 해도 국민이 편안하고 잘사는 나라를 이루겠다는 데 다른 목소리가 없었다. 신년 벽두부터 김 빼는 얘기지만, 신년 인사란 결국 똑같은 덕담을 해마다 판박이하는 게 아닌가싶을 정도다.

하지만 어느 회의든 모두(冒頭)의 인사말이 성패를 결정지을 순 없다. 2003년이 그랬고, 2004년이 그랬다. 지난 2년은 신년 헌사는 화려하고 달콤했지만 친노무현과 반노무현 세력 간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지지고, 볶고, 끓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란히 달려가야 할 바퀴와 바퀴가 반목한 채 서로 다른 곳으로 가려 하니 수레가 정상으로 굴러갈 리 만무하다. 결국 진정한 이해가 실천되지 않은 신년 다짐은 대외용 허언(虛言)에 불과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년을 “나로서 비롯된 일이 너무 많았고, 나로 말미암아 생긴 변화가 많았다”고 했다. 맞는 얘기다. 2005년 새해도 노대통령을 중심으로 분열된 세력 간의 반감과 편견, 무지와 오해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희망’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무지와 편견으로 인한 부적절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동서고금에 숱하다. 중세 이슬람 세계를 공격한 십자군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유럽 땅 곳곳에서 “너희가 이슬람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슬람인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정확히 몰랐다. 십자군들은 터키 땅의 기독교인들을 이슬람인으로 착각해 살육하기도 했다. 이슬람이 세계 55개국 13억 모슬렘들의 생활양식을 규정하는 거대 문명임에도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지금도 여전하다.

친노와 반노 세력 간의 인식은 서방 세계가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동떨어져 있다. 친노(親勞), 반기업, 친북좌파, 분배 우선, 반미정권 등…. 지난 2년 노무현 대통령에게 붙여진 실체 없는 딱지는 한둘이 아니다. 제1야당 대표 입에선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나왔다. 국정 운영의 또다른 당사자인 야당의 ‘대통령 무시’는 국가적 불행이다. 노대통령은 그 시기를 “날아오는 돌팔매질을 맞고 피하고 막고 쫓겨다녔다”고 했다.

2005년은 노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희망의 노래는 그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그간 딱지를 붙이고 해명하고, ‘그렇다’ ‘아니다’를 놓고 벌인 소모적 논란과 국가적 낭비는 이제 재론하지 말자. 사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노정권의 정책은 실상 개혁이랄 것도, 야당과의 차이랄 것도 없다는 판단이 들 정도다.

올해가 유일하게 선거가 없는 해란 점은 여러 면에서 호조건이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에 들어가면 다시 정쟁을 피할 수 없을 게 자명하다. 분열세력 간에 무한정 벌어지는 ‘도전과 응전’으론 국가가 발전할 수 없다. 대통령이 정적(政敵)은 될지언정,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는 아니지 않은가.

선진 한국의 전략지도는 여와 야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야 한다. 21세기 ‘신(新)대동여지도’를 그리는 데 친노와 반노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새해를 맞으면서 올해는 좀 나아질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국민들에겐 그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최상의 선물이다. 귀가 닳는 신년사는 이제 됐다. 지금부터 실천만 남아 있다. 

〈박래용 정치부차장 le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