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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들/아침을 열며

[아침을 열며] 눈 가리고 귀 막고…

검찰은 그 어떤 곳보다 힘이 있다. 위계질서도 엄격한 조직이다. 위의 뜻이 일사불란하게 밑바닥까지 내리 꽂히는 몇 안되는 조직이다. 이른바 검사동일체 원칙이다. 거기서도 검사들 간 급이 나눠지는 모양이다.

“부장검사 시절엔 일 잘하는 검사가 최고다. 차장검사 때는 말귀 알아듣는 검사를 찾게 된다. 검사장이 되니 말하지 않더라도 미리 알아서 딱딱 맞춰 가지고 오는 검사가 최고로 보이더라.”

서울지검장을 지낸 은퇴한 한 검사장의 얘기다. 인지상정이다. 검찰뿐 아니라 어느 조직, 어느 상사도 골치 아픈 일을 미리 알아서 마음에 쏙 들게 정리해오는 부하를 가까이 두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5·6공 시절 서울지검 공안·형사·특수부 등 각 부의 수석부장인 1부장은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으로 채운다는 권력 내부의 방침이 있었다. 사시 후배가 선임 부장 자리에 앉아도 누구 하나 끽 소리 못했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에는 PK(부산·경남)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민다는 말이 공공연했다. TK출신 박종철 검찰총장은 새 정부 출범 반년 만에 중도하차하고 후임에는 부산 출신 김도언 대검 차장이 임명됐다. 총장 임기제(2년)는 “우리 사람을 써야 한다”는 권력 내부의 주장에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졌다. 주요 라인 역시 PK 출신이 줄줄이 꿰찬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영남 일색 사정기관장 인사

그때 있었던 사건 하나는 지금도 검찰의 코미디로 회자되고 있다. 야당에서 청와대 장학로 제1부속실장이 수십억원 축재를 했다는 비리를 폭로했다. 1996년 15대 총선을 20여일 앞두고서다. 칼국수만 먹는 것으로 알려진 YS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쩍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민심이 들끓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장 실장은 소환 이틀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장 실장은 동거녀 명의 통장에 현금 27억원을 숨겨놓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종찬 당시 서울지검 3차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동거녀는 이 돈이 80년대 일본인 다나카상과 동거하며 한 번에 수천만엔씩 총 2억여엔을 받아 장롱 속에 넣어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재산은 그 돈을 바꿔 불린 것이라고 합니다. 돈 준 다나카상은 사망하고 없습니다.”

다나카상은 있지도 않은 가공의 인물이었다. 한 번에 수천만엔씩을 받았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 돈을 10년 가까이 장롱 속에 처박아 뒀다는 기가 막힌 발표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검찰은 장 실장이 대통령 집무실 문지기를 하며 정·관·재계 인사 100여명으로부터 이른바 떡값을 받았다고 마지못해 공개했다.
그나마 7억원은 돈 준 사람을 밝혀냈고 나머지 20억원은 돈은 있으나 돈 준 사람은 밝히지 않은 채 일괄 떡값으로 규정, 없던 일로 처리했다. ‘기네스북에 오를 세상에서 가장 큰 떡’이란 냉소가 나왔지만 당시 청와대·여당 어디에서도 수사를 잘못했다고 질책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말 귀를 알아들었거나 미리 알아서 맞춰왔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자 그들은 모두 검찰을 떠났다. 

그때의 이차장은 지금 이명박 정부의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정치검찰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정권은 내 사람을 썼고, 그는 정권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무슨 무슨 게이트니 하는 정권 붕괴, 민심 이반의 사단(事端)이 일어나는 최초의 원인이다. 문민정부 때도 그랬고, DJ때도 그랬다. ‘소통령 김현철 사단’과 ‘궐밖 정승 동교동’의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이유다. 

‘친위 권력’ 정권말기 보는듯

사정기관은 이들의 비정(秕政)을 일찌감치 감지했지만 어디에서도 알람을 울리지 않았다. 모두 요직에서 끼리끼리 통하는 ‘공생의 동아리’가 확산되면서 정권 내부의 집단적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장·법무장관·검찰총장·경찰청장·청와대 민정수석 등 5대 사정라인 수장들이 모두 영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영남 향우회니 영남 브러더스니 비아냥이 나오지만 우이독경,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권력기관을 친위부대화해 공적 권력을 사유화한 말로가 어떠했는가. 눈 가리고 귀 막기…. 정권 말기 현상이 새 정부 초기부터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 박래용/사회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