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서울이 도(道)와 같은 수준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서울특별시’로 승격됐을 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서울이 특별시면 우리는 보통 시민이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특별’에 대한 막연한 시기이자 반발심리 때문이다. ‘특(特)’자 좋아하는 심리는 만국 공통이겠지만 우리는 좀더 유별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몇천원 차이 안나면서도 순대국·닭도리탕·보신탕 메뉴판마다 ‘특’을 붙여놓은 것도 이런 심리를 겨냥한 것일 게다. 뭐가 다르냐고 하면 “고기가 많이 들어간다”는 얄팍한 답을 들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주문하는 모양이 우습다.
특자 상혼은 음식뿐 아니다. 거리엔 1년 365일 ‘스페셜 세일’을 하는 가게들 천지다. 자극은 무뎌지게 마련이어서 이젠 ‘깜짝’ ‘특대’ ‘폭탄’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기왕의 ‘특’은 보통급으로 느껴지는 세상이다.
몇천원 차이 안나면서도 순대국·닭도리탕·보신탕 메뉴판마다 ‘특’을 붙여놓은 것도 이런 심리를 겨냥한 것일 게다. 뭐가 다르냐고 하면 “고기가 많이 들어간다”는 얄팍한 답을 들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주문하는 모양이 우습다.
특자 상혼은 음식뿐 아니다. 거리엔 1년 365일 ‘스페셜 세일’을 하는 가게들 천지다. 자극은 무뎌지게 마련이어서 이젠 ‘깜짝’ ‘특대’ ‘폭탄’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기왕의 ‘특’은 보통급으로 느껴지는 세상이다.
-‘밑져야 본전’ 너도나도 신청-
엊그제 행정자치부는 전국 30개 마을을 ‘살기좋은 지역 특구’로 지정해 고품격 생활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특구로 지정되면 교육·의료·환경·주택 분야에서 각종 규제를 완화해 준다는 것이다.
교육특구는 학교 운동장 설립기준을 좀 풀어주고, 산업특구는 광고물 종류나 모양 등의 규제를 완화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풀어주겠다는 규제가 47개 법률 97개 조항에 걸쳐 있다.
요컨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규제를 풀어 줘 ‘살기좋은 지역’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고, 그게 이름 붙이기를 ‘특구’라는 것이다. 규제 해제조치 중엔 외국인 교원의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해 주겠다는 것도 있다.
지역특구제도는 참여정부의 역점 정책 중 하나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구를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7대 과제 중의 하나로 추진할 것”을 지시하고 진행상황을 직접 챙기고 있다.
대통령의 엄명을 어느 누가 거역할 것인가. 문화체육부는 ‘관광특구’를, 재경부는 ‘지역발전특구’를 여기저기 만들었고, 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 특구’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웬만한 부처치고 특구제를 안하면 노는 것처럼 비쳐질까 우려하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특구 신청을 받은 결과 전국 189개 시·군·구에서 총 448개를 신청했다고 한다. 기초자치단체당 1.9개꼴이다. ‘생선회 특구’ ‘애완동물산업 특구’ ‘여성한방클리닉 특구’ 등 동네마다 특구 신청을 안한 곳이 없을 정도다. 특구로 지정되면 온갖 규제를 풀어주겠다는데 너도나도 신청서를 낸 지자체를 탓할 노릇은 아니다. 아닌 말로 ‘밑져야 본전’ 아닌가.
실상이 이러니 전국이 ‘특구 시대’란 말이 나오는 것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특구는 원래 79년 중국이 외자 도입을 위해 개방전략의 일환으로 선전(深圳) 등에 처음 설치한 뒤 국제적 용어로 정착했다. 중국의 경제특구는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명실공히 특별행정자치구의 성격을 갖는다.
반면 우리 정부가 지금 벌이고 있는 특구 사업은 지역 특성을 살린 것이 대부분이다. 새삼 특구로 명명하지 않더라도 이천 도자기, 순창 고추장, 청양 고추, 영덕 대게처럼 이미 특화가 돼 있는 곳도 많다.
-특화못해 흐지부지 수두룩-
중국과 달리 우리의 특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란 것은 특정지역에 한해 규제를 대폭 완화해주는 것이 전부다. 규제를 풀어서 살기 좋아진다면 왜 다른 지역의 규제는 풀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시혜를 베풀 듯 규제를 풀어주는 것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특구로 지정만 된 채 ‘특별한 운영’을 하지 못해 흐지부지된 경우를 많이 봐왔기에 하는 소리다. 우리나라 특구의 원조는 ‘관광특구’다. 정부는 94년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유성온천을 비롯해 제주·해운대·설악산·경주 등 5개 지역을 처음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대전과 유성을 찾은 외국인은 93년 51만여명에서 2006년 31만여명으로 떨어졌다. 내국인도 534만명에서 304만명으로 감소했다. 특구로만 지정해 놓고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오히려 보통 지역보다 인기를 잃고 있는 사례다. 유성구는 특구바람이 불자 이번엔 ‘패밀리 관광특구’를 신청했다고 한다. 10여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특구 이름 앞에 ‘패밀리’를 넣었다는 점이다.
공무원들 참 할 일도 없다. 국밥엔 고기라도 몇점 더 들어간다지만 대한민국 특구엔 뭐가 있는가.
〈박래용/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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