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육류 가공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일선 세무서장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압수수색영장 신청과 거부는 핑퐁처럼 7차례나 되풀이됐다. 구속영장도 반려됐다. 세무서장은 현직 부장검사의 친형이었다.
# 경찰이 수도권 별장에서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법무부 차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기각했다. 유력한 증언과 증거가 있는데도 조사 한 번 하지 못했다. 차관은 조용히 사퇴했고, 검찰은 무혐의 종결했다.
한인섭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위원장이 9월 18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판·검사 등의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공수처 신설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수사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검찰 마음대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누구든 잡아넣을 수 있고, 언제든 풀어줄 수 있다. “걸어다니는 모든 사람이 잠정적 피의자로 보인다”고 검사들은 말한다. 특히 고위공직자·국회의원·재벌 등 권력자들은 검찰의 좋은 먹잇감이다. 검찰의 힘은 검찰 출신 변호사와 국회의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검찰의 힘이 세야 전관예우도 있고, 위세도 떨칠 수 있다. 공수처는 이런 검찰에게서 고위급 수사권을 빼앗는 것이다. 사법 사상 누구로부터 견제받은 적이 없었던 검사들도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가 진작에 있었다면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다단계 사기범으로부터 돈 받은 부장검사, 대학 동창에게 공짜 주식을 받은 검사장은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수처는 검찰 권력을 쪼개는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모두가 찬성이다. 그러나 딱 한 군데 반대하는 곳이 있다. 국회 법사위 소위 회의의 한 장면이다.
김진태 의원(자유한국당) = “우리가 여당일 때도 반대했는데, 지금 야당이 돼서 어떻게 찬성하나. 지금 검찰이 적폐청산이다 해가지고 정권 손발이 되어서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여기에 또 다른 발을 해가지고 또 다른 칼을 쥐여주면 그거는 아닌 것 같다. 벌써 네 번째 올라왔는데 안된다고 하는데 계속 올려가지고 똑같은 말 하게 하고 나만 나쁜 사람 만들고 이게 뭐냐.”
여상규 의원(한국당) = “국민 여론이 몇% 찬성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야 고위공직자나 힘 있는 사람들 특별히 수사하는 기구를 둔다면 찬성하겠지. 나라도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일반 대중에 따라 이런 기구를 설치할 건 아니라고 본다. 왜 공수처를 도입해야 되나 잘 모르겠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10월 16일 오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과 언쟁을 벌인 뒤 감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대선 공약으로 공수처 설치를 약속했다.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 반대가 당론이다. 시민 10명 중 8명 이상이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고 있다. 한국당은 논의 자체를 보이콧하고 있다. 이런 거 올리지 말라고 한다. 왜 도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홍준표 대표는 “공수처는 좌파 검찰청”이라고 했다. 그는 “공수처라는 것이 우리 국민 80%가 찬성하는데 어떤 기관이 될 것인지 모르고 찬성하는 것”이라며 “아프리카에도 없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를 만들어 대한민국 수사기관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 말 대잔치다.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국민은 우중(愚衆)이란 얘기다. 민중은 개·돼지란 발언과 똑같다. 미국엔 FBI가 있음에도 ‘정부윤리청’ 같은 공직비리 전담기구가 있다. 호주에는 ‘반부패위원회’가 고위공직자 부패를 수사한다. 싱가포르는 ‘탐오 조사국’, 홍콩에는 ‘염정공서’가 있다. 모두 성공한 반부패기구로 손꼽힌다. 이런 기구 덕분에 국제투명성기구 176개국 중 청렴한 나라 7위 싱가포르, 13위 호주, 15위 홍콩, 18위 미국이 올라 있는 것이다. 한국은 52위다.
한국당은 공수처장 후보를 야당에서 추천하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대신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나 논의하자고 한다. 공수처 도입과 검경 수사권 조정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한나라당은 지난 20여년간 공수처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외면하고 시간을 끌다가 폐기 시켰다. 이번에도 수사권 조정 실랑이를 하다 공수처는 흐지부지할 게 뻔하다. 공수처가 두려운 사람은 죄 지은 자 뿐이다.
바뀐 것은 대통령 한 명밖에 없다. 체계나 인적 구성은 과거 정부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구체제의 반격은 집요하다. 5선 출신의 국회 부의장은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했다.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이들은 또다시 무릎 꿇고 절하고 읍소할 것이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정권교체가 시대교체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시민들은 대의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민들은 선거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들 한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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