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났다. 이제 다시 현실이다. 겨울동화에서 깨어나니 눈앞에 포연이 자욱하다. 보수정당·보수언론은 북한에서 온 올림픽 사절 김영철을 잡아 죽이라고 한다. 전쟁 중에도 사신(使臣)은 막지 않는다. 사신의 목을 베라는 건 전쟁을 하자는 얘기다. 이성적이지 않다. 새누리당이 3년 전 북측 대표를 환대했던 것과도 자기모순이요 이중적 태도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다. 왜일까. 평창 올림픽이 끝남과 동시에 6·13 지방선거의 막이 오른다. 3월엔 이명박 소환과 박근혜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11년간 묻혀왔던 다스와 도곡동 땅의 진실이 밝혀지면 MB가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박근혜에겐 중형이 선고될 것이다. 더 이상 정치보복이란 주장을 했다가는 대로에서 뺨맞기 십상이다. 두 사안은 당면한 최대 블랙홀이다. 그 후엔 딱히 정국을 압도할 이슈가 없다. 본격 선거에 들어가면 난타전에 공방만 오갈 뿐이다. 자유한국당엔 절망적인 상황이다. ‘김영철 장사’는 절망에 빠져 있는 보수세력에 흩어진 지지층을 다시 하나로 모으기 위한 마지막 기회다. 하늘에서 내려온 두레박이요, 가뭄에 물 만난 격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 대표,김성태 원내대표등이 26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북한 김영철 방남 규탄대회에 참석하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선수들이 줄을 서 있고, 자유한국당은 인물난이다. 한국당 대변인은 “씨가 말랐다”고 했다. 시장 분위기는 상인들이 가장 잘 안다. 오세훈·홍정욱·안대희 등 내세울 만한 인물은 다 손사래를 친다. 될 성싶지 않다는 얘기다.
1995년 이후 지금까지 지방선거는 총 6번 치러졌다. 여당은 5번의 참패를 당했다. 여당이 유일하게 이겼던 때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넉 달 만에 열린 2회 지방선거였다. 집권 초기 선거는 여당이 절대 유리하다. 허니문 기간의 대선 연장 효과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견고한 안정세(66~68%)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 정당지지율도 48~51%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야당의 정권심판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정권심판보다 되레 한국당 심판을 얘기하는 게 더 먹히는 분위기다.
투표율과 연령대별 인구구조 변화도 여당에 호조건이다. 지방선거 투표율은 2000년대 들어 48.8%(2002년) → 51.6%(2006년) → 54.5%(2010년) → 56.8%(2014년)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마지막 지방선거는 총선 투표율(2016년 총선 58%)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지난 대선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주권자가 만든 선거였다. 시민들은 내가 나서면 세상이 바뀐다는 경험을 했다. 시민들은 깨어났고 주권의식이 눈을 떴다.
1980년대 민주항쟁을 주도했던 386은 50대를 구성하고 있다. 20~50대는 전체 인구의 75%다. 이들이 투표장으로 향하면 폭발력은 상상할 수 없다. 이젠 진보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반면 박근혜와 함께 가라앉은 야당은 좀처럼 다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김성태는 문재인 정부의 모든 것을 반대하고 있다. 반대할 것도 반대하고 반대 안 할 것도 반대하니, 정말 반대할 것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소수 극우세력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니 확장성도 없다. 합리적 중도 보수성향 유권자들은 마음을 둘 곳이 없다. 더 큰 위기는 이런 현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당 초선모임에선 “우리 당의 그릇이 부족해 민심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쯤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 꼭 예측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선거는 변수가 많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로 180석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안도한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내가 안 찍어도 되겠지’란 심정으로 투표에 무더기 불참했다. 야당 지지자들은 야권 참패의 절망적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달려갔다. 결과는 여소야대, 야당의 역전승이었다.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라는 초대형 악재에도 새누리당이 선전했다. 역시 보수지지층의 결집 때문이었다.
한국당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 시나리오다. 투표율을 최소로 낮추고, 보수 지지자들은 최대한 결집시키는 것이다. 홍준표가 걸핏하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관제 여론조사’라고 시비를 거는 것도 “믿지 마라” “믿지 마라”라며 최면을 걸기 위해서다. 한국의 보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잃은 것 같은 상실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예측이 뒤집힌 선거는 수도 없이 많다.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선거에 임하면 장담할 수 없다. 절박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고, 희생도 없다. 우연한 승리는 없다. 선거는 항상 절박한 쪽이 이긴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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