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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70대 3인방

집안에 어른이 있으면 좋은 점이 많다. 3대가 함께 살면 인성교육이 저절로 된다. 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 그 아버지 역시 선대를 보고 컸을 것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결과 ‘3대가 함께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답변이 한국 청소년은 52.3%로 일본(49.6%)·중국(45.8%)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 내 어른의 권위를 존중하는 응답도 가장 높았다. 걱정과 달리 우리 청소년은 어른을 공경할 마음가짐이 돼 있는 것이다.

역동적 세대, 유능한 세대, 경험 많은 세대가 한데 어우러진 노장청(老壯靑) 조화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미덕이다. 중국 제나라의 관중(貫中)은 군사들이 길을 잃자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 길을 찾았다. 겉으론 무용해 보이는 늙은 말도 왕년엔 간난신고(艱難辛苦)를 헤쳐나간 경험이 있는 법이다. 

이 정부 출범 초기 70대 노인들이 전면에 나설 때 한편으로는 이런 노마(老馬)의 지혜를 보여주리란 기대가 있었다. 전성기 때 부와 권력을 누릴 만큼 누려 본 원로들은 인생의 정리기에 남은 하나, 명예만을 존중하는 게 상례다. 원포인트 레슨이든, 주요 기관의 수장을 맡든 그 마지막 복무가 국민을 위한 봉사로 실행될 때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퇴장하고 명예도 남는다.

 

이를 알면 박희태·최시중·이상득 70대 3인방은 누구보다 더 긴장하고 헌신했어야 했다. 실제는 정반대, ‘국가 서열 2위’ ‘방통대군’ ‘상왕(上王)’으로 불리며 각기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셋은 임기 마지막 깔딱고개를 넘지 못하고 권좌에서 굴러떨어졌다.

이들의 사퇴의 변은 세상 물정 모르는 노인의 푸념과 같다. 박희태는 자신의 추락을 ‘희생’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당내 경선 때문에 이렇게 큰일이 일어나고 희생된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돈봉투가 불거진 뒤 한 달 내내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다 비서관의 폭로로 벼랑 끝에 몰리자 그제야 “약간 법의 범위를 벗어났던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시인했던 그다. 법무장관에 집권여당 대표에, 6선 의원 출신의 처신이라기엔 구차하기 그지없다. 그는 의정 사상 가장 불명예스럽게 중도 퇴진한 국회의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시중은 한 술 더 떴다. “모든 육체적·정신적 정력을 소진했기에 표표히 떠나겠다”고 했다. 양아들로 불리는 보좌관이 국회 문방위 의원들에게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답례로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다음날이다. 방통위 1대 위원장 3년 임기를 마치고 2대 위원장 임기를 시작한 작년 3월에는 정력이 팔팔했던 모양이다. 평생을 같이해줄 것 같았던 그의 양아들은 일찌감치 외국으로 달아났다. 양아들의 배신인지, 짜고 친 기획출국인지 알 수 없으나 관(冠)이 벗겨지고 갓끈이 끊어지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은 “당의 쇄신과 화합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 의원 55명이 성명까지 내며 정계 은퇴를 촉구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던 그의 뒤늦은 퇴장이 새누리당의 거름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총선 예비후보들이 자신의 경력란에 MB(이명박), SD(이상득)와의 관계를 숨긴다는 것을 보면 알 노릇이다. 여비서 계좌에서 나온 괴자금 7억원이 축의금 등을 그동안 안방 장롱 속에 보관해 왔던 돈이라고 해명한 것은 한국 정치비리사 중 몇대 말말말에 꼽힐 희언이다. 의원실 비서 7명 중 5명이 서로의 계좌를 통해 주고받은 뭉칫돈은 누구 집 어느 궤짝에서 나온 것인지는 아직 설명이 없다.

셋을 둘러싼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이 소도 웃을 해괴한 말로 사퇴의 변에 슈거코팅(sugarcoating)을 한 것을 보면 아직 권력은 우리 것이요, 검찰도 내 편이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이런 때 쓰자고 온갖 비판을 무릅쓰고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앉히고, 내 사람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던 정권이다. 선견지명의 효과는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검찰이 방패막이 돼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편이었지, 단 한번도 꺼져가는 권력에 선 적이 없다. 지난 정부 임기 말 국세청의 한상률이 그랬고, 새 정권 초 친노(親盧)의 주리를 튼 검찰이 그랬다. 

공직은 공공의 의무를 하는 자리이다. 그 자리는 어느 것이 국민과 국가에 이로운 결정인지 고민하고 반문하고 의논하는 곳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 동안 국정 주요 현안은 국회 의장석을 둘러싼 경위들이 대신 처리해준 기억밖에 없다. 최시중은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방송을 장악하고 친여보수언론에 종편을 안겨 방송시장을 황폐화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상득이 치적으로 내놓은 자원외교는 곳곳에서 뻥튀기 홍보가 확인되며 신뢰만 떨어뜨려놓았다. 어른이 집안에 있으면 좋다지만 어른 나름이다. 부정하고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어른의 모습이 교육에 좋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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