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6급 주무관이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4급 행정관에게 말한다.
“검찰에서 문제삼지 않기로 다 돼 있다고 해서 한 건데…. 제가 다른 사람까지 살려야 됩니까”
청와대 행정관이 말한다.
“그렇게 얘기하면 검찰의 전면 재수사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수사선상에 올라간다. 민정수석실도, 총리실도 자유롭지 못할 테고…. 자네 방식대로 가면 다 죽는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연루된 두 사람이 정부중앙청사 등나무 벤치에 앉아 주고받은 얘기다. 50여분간 나눈 녹음파일을 풀어보니 원고지 90장 분량이다. 주무관이 혼자만 팽(烹)당했다는 억울함을 얘기하면, 행정관이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해 회유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자네 평생 먹여살릴게. 캐시로 달라고 하면 그것부터 처리해줄게.” 벼랑 끝에 몰린 정권의 맨 밑바닥에서 동반 추락을 당하지 않으려는 필사적 속삭임이다. 숨이 막히고 소름이 돋는다. 상대를 어르고 달래는 데 성공한 그 행정관은 주미 한국대사관 주재관으로 발령받아 현재 워싱턴에 머물고 있다.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 사건에서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는 1898년 ‘로로르’지 1면에 실린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사설을 통해 외쳤다.
“진실은 지하에 묻혀버리지 않는다. 진실은 지하에 묻히면 스스로 자라난다. 마침내 자라난 진실은 무서운 폭발력을 지닌다.”
그의 선언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유효하다. 압제의 나라에서도 왜곡의 시대에도 진실은 자라고 전진하고 폭발한다. 드레퓌스가 누명을 벗기까지는 12년이 걸렸다.
25년 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우리는 진실의 폭발력을 목도한 바 있다. 처음에 경찰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속였고, 두번째로 고문경관을 2명으로 축소은폐했고, 세번째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로 공범이 더 있다는 진실이 밝혀졌다. 그때도 지금처럼 바깥의 상사들은 감옥의 부하에게 1억원이 든 통장을 흔들며 입막음을 시도했다. 맨 마지막에 경찰 총수가 구속되기까지 진실이 창천(蒼天)의 명일(明日)로 솟아오르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렇게 팽창된 진실이었기에 철옹성 같던 5공 군사독재정권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폭발력을 지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종철 사건과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공통점은 단 하나, 고문이나 도청 자체보다 은폐 축소가 더 큰 문제가 돼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 릴레이를 한 권력의 죄상(罪狀)은 그 어떤 범죄보다 훨씬 더 중하고 추악하기 때문이다.
지금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도 진실을 향한 전진은 2년째 계속되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던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원관실 출범식에 참석한 사실이 밝혀지고, 지원관실 직원 수첩에 ‘BH 하명’이라 적힌 메모가 발견되고, 검찰 조사를 먼저 받고 나온 피의자가 신문조서를 들고 다니며 수사 대상자와 말을 맞추고, 재판에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장에게 구두보고했다”는 진술이 줄줄이 이어졌다. 종국에는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주도하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생생한 육성까지 공개됐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다.
그래도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주무관의 첫 폭로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재수사의 근거가 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검찰이 내게 절절매는 것은 내가 죽으면 당장 재수사에 가고, 특검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녹취록 발언을 보면 이제야 그 곡절을 알 것 같다. 스스로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니 머뭇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가 은폐 조작의 사령탑 의혹을 받고 있는 마당에 진실을 파헤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때의 민정수석이 지금 법무장관이고, 이런 때 써먹자고 내 사람을 검찰총장에 앉혔으니 증거 보따리 아니라 누가 제 발로 자수를 해와도 돌려보낼 판이다. 검찰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결국 이 사건은 검찰을 쳐다볼 게 아니라 총선 뒤 19대 국회에서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제3의 손에 맡기는 길밖에 없다.
아무리 황당무계한 권력도 세상이 응시하는 광장에선 활개를 펴지 못한다.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데는 시민의 각성과 노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기나긴 군사독재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민주체제로 들어선 지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누가 민간인의 뒤를 캐고 직장에서 내쫓았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 사실이 발각나자 총리실의 컴퓨터를 한강에 버리든지 망치로 부수든지 없애라고 한 윗선을 밝혀내야 한다.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숨기려고 “입을 닫으면 평생 먹여살려 주겠다”고 했는지 베일을 벗겨내야 한다. 한 줌도 안되는 ‘영포라인’이 어떻게 국정을 농단하고 조직적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아야겠다. 머지않았다. 몇 달 안 남았다.
“검찰에서 문제삼지 않기로 다 돼 있다고 해서 한 건데…. 제가 다른 사람까지 살려야 됩니까”
청와대 행정관이 말한다.
“그렇게 얘기하면 검찰의 전면 재수사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수사선상에 올라간다. 민정수석실도, 총리실도 자유롭지 못할 테고…. 자네 방식대로 가면 다 죽는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연루된 두 사람이 정부중앙청사 등나무 벤치에 앉아 주고받은 얘기다. 50여분간 나눈 녹음파일을 풀어보니 원고지 90장 분량이다. 주무관이 혼자만 팽(烹)당했다는 억울함을 얘기하면, 행정관이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해 회유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자네 평생 먹여살릴게. 캐시로 달라고 하면 그것부터 처리해줄게.” 벼랑 끝에 몰린 정권의 맨 밑바닥에서 동반 추락을 당하지 않으려는 필사적 속삭임이다. 숨이 막히고 소름이 돋는다. 상대를 어르고 달래는 데 성공한 그 행정관은 주미 한국대사관 주재관으로 발령받아 현재 워싱턴에 머물고 있다.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 사건에서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는 1898년 ‘로로르’지 1면에 실린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사설을 통해 외쳤다.
“진실은 지하에 묻혀버리지 않는다. 진실은 지하에 묻히면 스스로 자라난다. 마침내 자라난 진실은 무서운 폭발력을 지닌다.”
그의 선언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유효하다. 압제의 나라에서도 왜곡의 시대에도 진실은 자라고 전진하고 폭발한다. 드레퓌스가 누명을 벗기까지는 12년이 걸렸다.
25년 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우리는 진실의 폭발력을 목도한 바 있다. 처음에 경찰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속였고, 두번째로 고문경관을 2명으로 축소은폐했고, 세번째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로 공범이 더 있다는 진실이 밝혀졌다. 그때도 지금처럼 바깥의 상사들은 감옥의 부하에게 1억원이 든 통장을 흔들며 입막음을 시도했다. 맨 마지막에 경찰 총수가 구속되기까지 진실이 창천(蒼天)의 명일(明日)로 솟아오르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렇게 팽창된 진실이었기에 철옹성 같던 5공 군사독재정권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폭발력을 지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종철 사건과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공통점은 단 하나, 고문이나 도청 자체보다 은폐 축소가 더 큰 문제가 돼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 릴레이를 한 권력의 죄상(罪狀)은 그 어떤 범죄보다 훨씬 더 중하고 추악하기 때문이다.
지금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도 진실을 향한 전진은 2년째 계속되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던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원관실 출범식에 참석한 사실이 밝혀지고, 지원관실 직원 수첩에 ‘BH 하명’이라 적힌 메모가 발견되고, 검찰 조사를 먼저 받고 나온 피의자가 신문조서를 들고 다니며 수사 대상자와 말을 맞추고, 재판에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장에게 구두보고했다”는 진술이 줄줄이 이어졌다. 종국에는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주도하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생생한 육성까지 공개됐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다.
그래도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주무관의 첫 폭로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재수사의 근거가 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검찰이 내게 절절매는 것은 내가 죽으면 당장 재수사에 가고, 특검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녹취록 발언을 보면 이제야 그 곡절을 알 것 같다. 스스로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니 머뭇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가 은폐 조작의 사령탑 의혹을 받고 있는 마당에 진실을 파헤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때의 민정수석이 지금 법무장관이고, 이런 때 써먹자고 내 사람을 검찰총장에 앉혔으니 증거 보따리 아니라 누가 제 발로 자수를 해와도 돌려보낼 판이다. 검찰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결국 이 사건은 검찰을 쳐다볼 게 아니라 총선 뒤 19대 국회에서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제3의 손에 맡기는 길밖에 없다.
아무리 황당무계한 권력도 세상이 응시하는 광장에선 활개를 펴지 못한다.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데는 시민의 각성과 노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기나긴 군사독재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민주체제로 들어선 지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누가 민간인의 뒤를 캐고 직장에서 내쫓았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 사실이 발각나자 총리실의 컴퓨터를 한강에 버리든지 망치로 부수든지 없애라고 한 윗선을 밝혀내야 한다. 누구를 보호하고 무엇을 숨기려고 “입을 닫으면 평생 먹여살려 주겠다”고 했는지 베일을 벗겨내야 한다. 한 줌도 안되는 ‘영포라인’이 어떻게 국정을 농단하고 조직적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아야겠다. 머지않았다. 몇 달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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