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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국회의원의 반성문

요즘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마다 전화통에 불이 난다. 직접 찾아오는 시민들도 줄을 잇는다. 이달부터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신청하기 위해서다. 아동수당은 6살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주는 복지제도다. 올해부터 새로 도입됐다.

 

국회는 지난해 아동수당 신설을 확정하며 소득 상위 10% 가정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당은 “고소득 가구의 자녀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고 했다. 이건희 회장 손자 같은 금수저에게도 돈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 바람에 전국 지자체에선 0~5세 자녀가 있는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재산조사를 실시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직원들이 1주일에 4~5일은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한다고 한다. 아이가 있는 집은 증빙서류를 떼고 제출하는 일이 이만저만 번거로운 게 아니다.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점도 큰 문제다.

 

6월 20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 주민자치센터에서 보호자들이 오는 9월부터 아동 1명당 월 10만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신청하고 있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아동수당은 만 6세미만 아동에게 수급아동기구의 경제적 수준이 2인 이상 전체 가구의 100분의 90 수준 이하인 경우에 1인당 월 10만원을 지급한다. 연합뉴스

 

이렇게 소득 상위 10%를 골라내기 위한 행정비용은 인건비와 금융조사 통보 비용 등 올해만 1600억원이 들고, 내년부터는 1000억원 정도 들 것이라고 한다. 6세 미만 아동 253만명 중 상위 10%를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면 1000억원가량 예산이 줄어든다. 금수저를 거르는 데 드는 비용이 그냥 아동수당을 다 주는 것보다 많은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건 딱 이런 때 쓰라고 만든 말 같다. 이런 희극이 없다. 사정이 이러니 경기 성남시와 서울 서대문구는 100%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겠다고 선언했고, 광명시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아동수당 상위 10% 배제’를 요구했던 것을 두고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인정한다”고 반성했다. 그는 지난해 예산 심의 시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으로 “아동수당은 선별적 복지 차원에서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정책의 부작용을 보면서 당시 오판을 인정하며, 제도의 수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국회의 졸속입법이나 부실한 예산 심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장은 외면한 채 탁상에 앉아서 법을 주무를 경우 아무리 선한 정책도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누구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한 초선 의원의 반성문은 더 신선하게 와닿는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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