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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영화광고 보지 않을 권리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 영화를 보러 간 엄마의 얘기다. 살인자가 한 여자 위에서 칼을 높이 쳐들고 내려찍기 직전의 영화 예고편 광고가 나왔다. 끔찍한 장면에 아이들이 귀를 막고 무섭다며 얼굴을 찡그렸다고 한다. 영화관에 앉으면 대출, 성형외과, 화장품 광고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분명히 영화 상영 시간에 맞춰 왔는데도 언제 영화가 시작되는지 알 수 없고, 광고를 원하지 않더라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한다. 관람제한연령도 상관없다. 12세, 15세 관람가 상영관에서 술 광고가 버젓이 나온다.

 

서울 용산 CGV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영화 티켓을 출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의 영화 시작 전 광고는 평균 10.8분 나온다. CGV가 14분, 롯데시네마 10.4분, 메가박스가 8.3분꼴이다. 티켓 판매 수익은 배급사와 영화관이 5 대 5로 나누지만, 매점과 광고 수익은 영화관 수입이다. CGV는 2017년 한 해 997억원의 광고수입을 거뒀다. 극장 광고는 피할 수도 없어 효과가 높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예 극장용 CF가 따로 제작될 정도다.

 

영화 시작 전 광고에 대한 불만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내가 왜 돈을 주고 광고를 보며 10분이 넘는 시간을 버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강탈당한 10분’이다. 관객 선택권을 위해 광고를 하려면 영화 끝난 후 틀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 2015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극장의 끼워넣기 광고는 불공정행위”라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티켓에 ‘본 영화는 표시 시각보다 10여분 후 시작된다’고 사전고지하고 있다”며 영화사의 손을 들어줬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화광고 보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영화관 홈페이지와 관람권에 실제 영화 상영 시간과 예고편·광고 소요 시간을 구분해 표시하도록 하고, 위반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한국인은 한 해 평균 4.3편의 영화를 본다. 영화 본산지인 미국 3.6편, 프랑스 3.1편에 비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영화관은 친숙한 공간이 됐다. 영화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피난과 안식을 준다. 안식을 찾아 피난 온 사람에게 광고를 억지로 보게 하는 건 아무래도 온당치 않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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