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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반문연대

우리나라 정치인과 조직폭력배의 공통점이 있다. 혼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늘 떼로 몰려다닌다. 고향이나 출신지에 따라 모인다. 주로 검은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조직의 이름은 보스의 이름이나 그가 사는 동네를 따서 만든다. 하는 일은 주로 모여서 같이 밥을 먹는다. 그래서 조폭은 ‘식구’라고 하고, 정치인은 ‘계보’라고 한다.

 

2008년 한나라당 공천서 탈락한 친박근혜계 인사들이 ‘친박연대’를 만들어 총선에 출마했다. 그 전해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서청원·홍사덕·이규택·엄호성 전 의원 등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반드시 살아서 박 전 대표에게 돌아가겠다”고 했다. 정작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 남아 있는데 그를 브랜드로 새 당을 만든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들에게 “살아 돌아오라”고 격려했다. 친박연대는 정책과 정견도 없이 특정인과의 친분을 내세운 ‘개인숭배형’ 정당이었지만 박근혜 동정표에 힘입어 14명의 당선인을 내고, 이들은 당당히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

 

13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재건비상행동 모임에서 정우택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진태 의원, 심재철 의원, 조경태 의원, 유기준 의원. 한국당 재건 나선 친박들 조기 전당대회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사퇴 등을 촉구하는 자유한국당 재건비상행동 모임이 13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우파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우택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진태·심재철·조경태·유기준 의원. 권호욱 기자

 

정치에서 유력 지도자와의 관계를 활용하는 건 상용 수법이다. 과거 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기와 영향력을 활용한 사례는 허다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엔 너도나도 친노 경력을 내밀었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던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선 이른바 ‘문재인 마케팅’이 홍수를 이룬 바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 사이 ‘반문(反文) 연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대로는 망한다’는 위기가 커지면서 계파를 뛰어넘어 문재인 정부에 대항하자는 것이다. 친박·비박, 복당파·잔류파 간 갈등을 묻어두고 합치려면 그런 깃발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한국당은 비상사태다. 그래서 비상대책위도 만들었다. 한데도 혁신안을 내놓기는커녕 ‘문재인 반대’로 다시 뭉치자고 한다. 비전은 없이 누구를 향한 반대가 보수의 가치, 보수의 희망일 리 없다. 묻지마 반문연대를 보고 ‘이제 정신을 바짝 차렸구나’라고 생각하는 시민은 없을 것이다. 정치권과 조폭의 세계 공통점 하나 추가, 우선 살고 보자는 데에선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는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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