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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검찰총장의 눈물

1999년 김태정 검찰총장은 ‘대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는 “제 손으로 후배검사들의 사표를 받고 그 가족들에게 평생 남을 고통을 안겨줬다”며 울컥 눈물을 흘리고 흰 손수건을 꺼냈다. 나중에 이 장면이 기획·연출된 ‘눈물쇼’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악어의 눈물’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역대 검찰총장은 검찰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2006년 이후 12년 동안 검찰총장이 시민에게 사과한 것은 9차례, 평균 1년4개월에 한번꼴이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책임을 지고 사과한 뒤 사퇴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가 지연되자 사과했고, 국가정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서 또 한번 사과했다. 두번 모두 간부회의 발언을 대변인이 전한 것으로 ‘대독(代讀) 사과’였다. “깨끗하고 믿음직한 검찰이 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점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정상명·김준규·한상대·김수남 검찰총장이 ‘스폰서 검사’ ‘뇌물수수 부장검사’ 같은 비리가 터질 때마다 내놓은 사과문은 판박이처럼 똑같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사과문을 읽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인권침해의 실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문 총장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형제복지원은 1975~1987년 부랑인 선도 명목으로 운영된 수용시설로 시민을 불법감금하고 강제노역과 학대 등이 저질러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복지원 공식 집계로만 513명이 사망했다. 문 총장의 사과는 당시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공식 인정한 것이다. 역대 검찰총장 중 처음이다.

 

문 총장은 지난 3월 박종철 열사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고문치사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 대해 강기훈씨에게도 직접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검찰총장의 과거사 사과는 검찰의 잘못을 반성하는 데서 나아가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사과는 열번이고 백번이고 필요하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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