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은 화난 표정이었다. 마치 선생님에게 혼난 학생처럼 입술을 깨물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가 예정된 날이다. 신 대법관이 촛불재판 개입으로 윤리위에 회부된 이후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는 자리다.
매월 둘째·넷째주 목요일은 대법 선고일이다. 대법원엔 3개의 소부(小部)가 있고, 1개 소부는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돼 있다. 대법원은 지난 한 해 2만9000여건의 선고를 내렸다. 같은 부의 대법관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사건은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가운데 낀 셋째주 목요일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는 날이다. 전원합의체 사건은 1년에 20건 안팎에 불과하다. 기존 판례를 변경하거나 의미있는 판례가 나오기 십상이다. 이날은 차명이든 누구든 예금 명의인을 실제 돈 주인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다.
가운데 낀 셋째주 목요일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는 날이다. 전원합의체 사건은 1년에 20건 안팎에 불과하다. 기존 판례를 변경하거나 의미있는 판례가 나오기 십상이다. 이날은 차명이든 누구든 예금 명의인을 실제 돈 주인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다.
법정엔 사건 당사자들보다 기자들과 법원 관계자가 더 많았다. “모두 일어서십시오.” 제복 차림의 정리(廷吏)가 소리쳤다.
이용훈 대법원장 등 13명의 대법관이 양쪽 문을 통해 두줄로 나눠 차례로 들어오고 있었다. 대법관들은 서열에 따라 대법원장 우측과 좌측에 한 명씩 자리를 채워가며 앉는다. 신참 대법관으로 서열이 가장 낮은 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맨 왼쪽, 방청석에서 봤을 때는 오른쪽 끝에 자리했다.
대법관이 모두 자리에 앉을 때까지 방청인은 서 있어야 했다. 재판부가 입·퇴정할 때마다 방청인들을 일어서도록 하는 법원의 관행에 대해서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법정 권위주의”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판사를 보고 예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복을 입은 법관’에게 존중을 표하는 것이란 정서가 아직은 더 센 것 같다.
대법관이 모두 자리에 앉을 때까지 방청인은 서 있어야 했다. 재판부가 입·퇴정할 때마다 방청인들을 일어서도록 하는 법원의 관행에 대해서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법정 권위주의”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판사를 보고 예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복을 입은 법관’에게 존중을 표하는 것이란 정서가 아직은 더 센 것 같다.
申대법관 입술 깨물고 정면응시
눈치빠른 카메라 기자들은 미리 신 대법관과 가까운 오른쪽 통로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펑’ ‘펑’ 줄곧 플래시가 터졌으나 신 대법관은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꼿꼿이 앞만 바라보았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아, 쉽게 그만두지 않겠구나’란 느낌을 받았다. 신 대법관이 앉아 있는 사법부에 대해 국민의 생각은 어떻다고 보고 있을까. 대법원에서 만난 한 부장판사는 “참, 곤혹스럽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앞 머리 몇 올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그러자 진짜 곤혹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신 대법관은 28년 판사 생활을 이렇게 마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오른 대법관인데, 한 달 만에 그만둔단 말인가. 사상 최초 대법관 중도사퇴란 불명예 딱지도 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해가 간다. 사퇴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쉽게 얘기하지만 당사자는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심정이지 않겠는가. 그래도 그가 그만둬야 할 이유는 열가지, 백가지가 넘는다.
“입법부는 지갑을, 행정부는 칼을 가지고 있다. 사법부는 지갑도 칼도 없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만 가지고 있다.”
10달러짜리 지폐에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미국의 법률가이자 정치인 알렉산더 해밀턴 얘기다. 빈털터리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밑천으로 비로소 권부(權府)가 됐다.
신영철 대법관은 사법부의 생명인 신뢰와 권위를 다 떨어뜨려 놓았다. 법원장으로서 촛불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었다가 판사들이 반발하자 컴퓨터 배당으로 돌렸다. 보석을 내주지 말라고 전화를 걸고,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에 빨리 빨리 지금의 법으로 종결지으라고 e메일을 거듭 보냈다.
진상조사단은 이를 재판 개입과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점잖게 발표했지만, 바꿔 말하면 판사들에게 형법을 무기로 시민을 찌르라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가 버티고 있는 한 법원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은 법으로 국민을 공격하는 신영철의 이미지와 오버랩될지 모른다.
진상조사단은 이를 재판 개입과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점잖게 발표했지만, 바꿔 말하면 판사들에게 형법을 무기로 시민을 찌르라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가 버티고 있는 한 법원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은 법으로 국민을 공격하는 신영철의 이미지와 오버랩될지 모른다.
국민신뢰 회복위해 결단 내려야
“모두 일어서십시오.” 정리가 다시 외쳤다. 2건의 선고 요지를 읽고 재판은 끝났다. 대법관들이 빠르게 일어서 의자 사이로 병정처럼 섰다.
대법원장이 일어서 나가자 서열순으로 의자 사이의 대법관들이 직각으로 나와 그 뒤를 따랐다. 검정색 법복을 입은 대법관들의 일렬 퇴정은 종교의식처럼 근엄해 보였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그런 의식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대법원장이 일어서 나가자 서열순으로 의자 사이의 대법관들이 직각으로 나와 그 뒤를 따랐다. 검정색 법복을 입은 대법관들의 일렬 퇴정은 종교의식처럼 근엄해 보였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그런 의식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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