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일 자정을 기해 고향에 내려간 귀성객들은 전원 상경을 금지한다. 정부는 귀향자들이 현재 체류하고 있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직장과 거주지를 지원한다. 서울에 있는 부동산 등 자산은 소정의 절차를 거쳐 소유주에게 돌려준다….”
언젠가 신문사 동료들끼리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차와 사람을 한탄하며 이제 수도권 집중 해결책은 비상계엄령밖에 없을 것이라며 킬킬거린 적이 있다. 추석이나 설 연휴 귀성객들이 내려 간 사이 대통령이 긴급대국민성명을 통해 특단의 조치를 발표한다는 것이다. 귀경로 곳곳에는 탱크와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입경자를 막는다. 기업·학교에 당장 필요한 인력은 국가인력관리처에서 신청을 받아 제한된 인원 내에서 엄선한다.
멈춰선 차안에서 시간은 많고 입은 심심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기자들이 앞 다퉈 가상 시나리오를 써댔다. 아마도 그렇게 되면 언론이 가장 바빠질 것이다. 곳곳에서 달라진 지방 풍경을 스케치하고, 신판(新版) 이산가족 사연들도 취재해야 하지 않겠느냐. 가장 히트는 ‘모 장관·청와대 모 수석 가족, 올 추석에 고향 안 갔다…일부 고위층 비상조치 사전 인지 의혹’이란 기사가 나올 것이다라는 등등….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추석 귀성·귀경전쟁을 또 한번 겪었다. 올 추석은 예년보다 편했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고향길 갔다 오는데 열 몇시간 걸렸다는 얘기는 철마다 듣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뿐인 수도권 집중
수도권 집중 문제가 한계상황을 넘어섰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78개 도시 비교결과 인구 735만명이 넘는 도시는 ‘집적의 불경제’가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어느 대도시든 735만명을 넘어서면서부터는 효율성이 뚝 떨어진다는 얘기다.
해법은 나와 있다. 수도권은 비우고, 지방은 채우는 길이다. 뻔히 답을 알고 있는 이 문제를 누가 언제 풀 것인지….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행정수도 이전은 이른바 ‘관습 헌법론’에 부딪쳐 무산됐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수도=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함께 수도권 분산의 꿈도 박제가 돼 못이 박혔다. 신행정수도는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로 축소됐지만, 이마저도 요즘엔 수도권 경쟁력 강화라는 ‘수정론’에 흔들리고 있다. 그 전 정부가 추진해온 혁신도시(수도권 공공기관 125개를 이전시키기 위해 짓는 도시), 기업도시(민간 기업이 토지수용권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개발하는 특정 산업 중심의 기능도시)도 덩달아 지지부진이다.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개발이 억제됐던 수도권의 각종 규제를 완화해 개발 일변도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수도권은 공룡이 된 지 오래다. 인구의 절반이 국토의 11.8%에 몰려 있는 사회에서는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구조는 도대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체 57%, 금융예금 69%, 4년제 대학 39%, 공공기관 85%, 의료기관 51%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한강의 기적’은 있겠지만 ‘낙동강의 기적’ ‘영산강의 기적’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1940년대의 프랑스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도 중세시대부터 이어온 중앙집권 체제의 폐해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한계를 드러냈다고 한다. 파리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황폐화 현상은 심각했다.
‘낙동·영산·금강의 기적’은 언제
“프랑스에서 파리가 아닌 곳은 사막과 같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장 프랑수아 그라비에는 1947년 프랑스의 지독한 수도권 집중현상을 “파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막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60여년이 흐른 지금 프랑스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도와 지방의 균형발전 모범국가로 성장했다. 현재 파리 수도권이 차지하는 인구비중은 19%로 뚝 떨어졌다.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프랑스는 국토발전정책을 만들어 50여년 동안 체계적으로 차근차근 진행해왔다. 정권에 따라 5년마다 달라지는 우리의 지방발전정책과는 여기서부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정부의 수도권 우대 정책은 재고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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