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조사(弔辭)에서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라도 못한 이야기를 나누자”고도 했다. 두 사람은 만났을까. 가상의 대화를 쓴다는 게 무례는 아닐까 주저했다. 생전 발언과 자료, 여러 도움말을 토대로 상상력을 섞었다.
(경향신문DB)
노무현: 지난 10년의 민주 정부를 생각하면 이 정부 현실은 기가 막힙니다.
김대중: 믿을 수가 없어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소. 이제 우리도 민주주의가 반석에 올라섰다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과거로 돌아갔어요.
노: 야당도 무기력했습니다. 6월항쟁 넥타이 부대가 지금 한국 사회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광범위한 우호세력을 두고 번번이 헛발질을 했잖습니까.
김: 우리나라엔 스스로 보수라고 규정하는 층이 40%가 있어요. 콘크리트 같은 층이오. 이런 보수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미래지향적이고 구체적이고 감동적이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 무작정 보수를 욕하는 것은 무능을 감추려고 화를 내는 것과 같아요. 야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것이 백골단 때문이었소? 국정원 때문이었소? 본인들의 무능력으로 무너진 거요. 비판보다 중요한 건 더 잘할 수 있는 실력이오.
노: 안철수 후보는 마치 10년 전 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정당도 없이 무소속으로 거침없이 치고 나가는 것을 보면 오히려 한 수 위인 것 같기도 한데요.
김: 노통은 문재인 편 아닌가(웃음). 그 친구 전직이 의사라는데, 우리 정치가 위독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려주러 온 의사가 아닌가 싶어요. 문제는 정당 기반인데…. 결과는 나도 궁금해요.
노: 요즘엔 야권 분위기가 좀 좋아진 것 같습니다. 단일화는 어찌해야 할까요.
김: 노통 때 57만표, 나 때 39만표 차이밖에 안 났잖소. 야권은 모든 세력을 다 합쳐야 2% 차이로 이길 수 있어요. 그렇다고 무작정 단일화한다고 두 후보의 지지율이 합쳐지는 것은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도 ‘박근혜는 안된다’ ‘새누리당 집권은 안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돼요. 그것은 총칼만 안 들었지, 내전을 하자는 얘기나 똑같은 것이오. 아주 위험하고, 민주주의 형태도 아닌 거요.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는 박근혜보다 뛰어난 미래 비전을 보여줘야 해요. 더 능력 있는 대통령의 상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야당 후보가 할 일이에요.
노: 한광옥 비서실장이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새누리당으로 들어갔던데요.
김: 새누리당은 필요한 사람 와서 좋고, 민주당은 필요없는 사람 정리해서 좋고… 이게 상생이고 통합 아닌가(웃음). 사람이든 축생이든 길이 아닌 데로 가면 욕보는 건 자연의 이치요. 정치도 마찬가지, 그 사람 말년에 게도 구럭도 다 놓치게 됐소.
노: 제 재임 시절 민주당에서 분당한 것은 망국적인 지역구도의 정당체제를 바꿔보려 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여의치 않았습니다.
김: 왜 그렇게 조급하게 서두르고 일부러 적을 만들었는지 안타까웠어요. 원래 정당은 고정 지지층을 외면해서는 존립할 수가 없어요. 얼마 전 문재인 후보가 정리했습디다. ‘참여정부의 큰 과오였고 호남에 상처를 줬다’고…. 사과했으니 지켜봅시다.
노: 대북송금 특검은 출범 초 정국이 꽉 막혀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에 수용이 불가피했습니다.
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 그것이었소. 영국 디즈레일리 총리는 돈이 궁한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주식을 팔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극비리에 매입한 적이 있어요. 수에즈 운하를 다른 나라가 지배한다면 영국은 큰 타격을 입게 돼요. 의회 승인을 얻어 예산을 확보해야 하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했다가는 큰 국제분쟁이 일어났을 거요. 그래서 총리는 가장 큰 재벌인 로스차일드 회사 돈으로 운하 운영권을 확보했습니다. 대북송금도 마찬가지요. 현대가 돈을 댔지만 그 몇 십배 사업권을 따냈어요. ‘퍼주기’가 아니라 ‘퍼오기’요, 평화와 국익을 위한 일이었소.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없는 통치행위였어요.
노: 저는 5년을 하루같이 공격받았습니다. 기득권 세력에 맞서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미워 죽겠는데 언행까지 못마땅하니 국정에 인격을 싸잡아 공격한 것이죠. 부관참시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실패한 정부에 비리 정부, 이젠 종북 정부로 흙칠을 하고 있습니다. 난 죽어도 죽은 게 아닙니다. 이 나라를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 했는데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가버린 것 같습니다.
김: 노 대통령은 이미 많은 일을 해냈소. 역사는 일직선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오. 때로는 중단되고 때로는 이탈하지만, 빙 돌아서라도 진보하는 것이 역사요. 정치가 국민을 속였지, 국민들이 실망시킨 적은 없잖소. 참으로 위대한 국민, 현명한 국민들입니다. 국민을 믿고 기다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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