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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에서

수신 : 윤대해 검사


대해야. 오늘도 검찰이 뉴스에 나오고 있구나…. 지난 한 달 동안 검찰은 막장 드라마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브로커에, 10억원 수뢰에, 성추문에, 나만 살겠다고 몸부림친 내부 권력다툼은 또 어떠했니. 검찰총장이 대법원장을 사랑하고 있다는 황당 뉴스만 안 나왔지, 상상가능한 모든 악재는 다 나왔다고 생각한다. 네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개혁을 외치는 글이 ‘꼼수’로 드러난 것도 검찰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데 일조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사실 브로커 검사나 수뢰 검사, 성 검사도 충격이었지만 너의 ‘위장 개혁’ 글이야말로 검찰이 자체 개혁 운운하는 게 얼마나 공허한 말장난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나. 진정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게 알려진 거지.




‘언론에서 평검사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극적인 방식으로 평검사회의를 개최하고 … 이런 분위기 속에 총장님이 큰 결단을 하는 모양으로 가야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는다.’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너의 아이디어는 정말 좋았던 것 같다. 너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지 않았다면 곳곳에서 평검사회의를 열고, 뭐라뭐라 개혁안을 요구하고, 검찰총장이 통 크게 수용하며 재신임을 묻고, 청와대는 개혁 완수를 당부하며 사표를 반려하는 대형 쇼가 전개될 뻔하지 않았니. 하마터면 네가 그렸던 그림 그대로 굴러갈 뻔했다. 



대해야.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시대에 맞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일갈했더구나. 권재진 법무장관도 비슷한 말을 했지. 정말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아니니. 두 사람은 TK(대구·경북)와 고려대 출신을 양대 축으로 요직에 앉혀서 권력형 비리는 덮고 야당 인사는 맘껏 물어뜯도록 부추긴 장본인이다. 사냥꾼이 이제 와서 사냥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이란 이런 때 쓰자고 만든 말일 것이다. 검찰의 추락에 가장 책임을 느껴야 할 두 당사자가 남 이야기 하듯 검찰에 반성을 주문한 것을 보면 막장 드라마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내가 검찰총장이라도 욱할 만하겠다. 시키는 대로, 어떤 땐 시키지 않아도 미리 잘 알아서 윗분들의 입맛에 딱딱 맞춰준 게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이냐. “오해와 음해로 점철된 끊임없는 전투와 여정, 결국 나는 이 전쟁에서 졌다.” 한상대의 퇴임사엔 억울하게 쫓겨났다는 울화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최재경 중수부장이 마치 개혁파의 선두에 서서 반개혁적인 검찰총장을 몰아낸 것처럼 포장된 것도 웃기는 얘기다. 최재경과 특수부 검사들은 중수부 폐지라는 검찰권력 약화에 반발한 것이지, 불의에 맞선 것이 아니다. 최재경은 친구인 김광준 부장검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죗값을 받으라”고 설득하기는커녕 “의혹을 부인하고 강경대처하라”고 조언해준 사람이다. 이 사실도 총장이 중수부장을 잡자고 다 까라고 지시하지 않았으면 감쪽같이 세상에 숨겨졌겠지. 그리보면 알려지지 않은 비행은 또 얼마나 더 있을지 궁금하다. 특수부 검사들이 이 정부 4년 반 동안 수사가 부당하다며 반기를 들었다는 얘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부당한 지시를 할 때는 뭐하고 있다가 이제 뒤늦게 총장 해꼬지하겠다고 대기업 회장 구형량을 깎아주라 했느니, 누구 수사를 봐주라 했느니 삿대질하는 것을 보면 참 염치도 없는 검사들이다. 검찰총장도 표적에 들면 인정사정 두지 않는, 정말 무서운 검찰이다.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지켜주는 곳이다. 하지만 너희는 고시 엘리트의 대표자로서 특권을 실현하고 자신을 지키는 곳으로 여기는 것 같다. 브로커, 스폰서, 벤츠, 그랜저, 뇌물수수, 성관계에 별별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괴물로 변모한 지 오래되지 않았니. 그동안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외부 기관의 수사를 받지 않고, 감싸줬으니 사실 무서울 게 없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제 그 권한은 빼앗기게 될 형편이 된 것 같다. 



대해야. 검찰총장이 사퇴한 것으로 검찰의 위기가 끝났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다. 차기 정부 대통령직인수위가 구성되면 검찰 개혁안은 구체적으로 마련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는 박근혜 후보가 반대하고, 문재인 후보는 찬성하고 있으니 검찰로서는 박근혜 당선을 고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검찰은 이제 어떤 모습으로든 외부의 손으로 개혁을 당하는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네 말대로 개혁하는 시늉만 내고 은근슬쩍 넘어갔으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냐. 이젠 숨을 곳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대해야. 사표 쓰고 나가서 어디서 뭐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다. 날씨도 추운데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모쪼록 건강 잘 챙겨서 새 정부에서 네가 말했던 위장 개혁이 어디까지 현실화되는지 지켜보도록 하자.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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