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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들/여적

[여적] 야간 재판

수원지법 안산지원(지원장 김흥준)이 엊그제 처음으로 야간재판을 열어 오후 7시부터 민사소액사건 13건을 처리했다. 밀린 노임을 받지 못한 50대 일용 노동자는 공사 업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2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냉동 송이버섯을 납품한 자영업자도 물품대금 550만원을 받게 됐다.
하루 일을 공치지 않고 무사히 재판을 마친 그들은 얼굴이 환해져 돌아갔다. 재판이 모두 끝난 시간은 오후 8시30분. 건당 심리 시간은 평균 7분꼴이었다. 고작 7분 재판을 받기 위해 직장과 생업에서 귀중한 낮 시간을 모두 빼앗길 뻔했던 서민들로서는 야간 법정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야간 재판은 소송가액 2000만원 이하의 민사소액사건이 대상이다. 주로 밀린 임금이나 물품·공사대금, 제때 돌려받지 못한 대여금·보증금 등에 대한 분쟁이다. 서민 생활과 직결돼 있어 ‘서민의 재판’이라고 불리며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소액사건은 전체 민사소송의 9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1990년 ‘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근무시간 외 또는 공휴일에도 개정(開庭)할 수 있다’고 소액사건심판법을 개정했지만, 20년 동안 한번도 실시된 적이 없었다.

 

일본은 민사조정이나 가사심판 등 일부 사건에 대해 오후 5시 이후에도 재판을 하고 있다. 뉴욕시 형사간이법원은 아예 야간재판부를 두고 1년 365일, 24시간 밤낮으로 사건을 처리한다. ‘잠들지 않는 도시(the city that never sleeps)’라는 뉴욕시의 모토에 맞춘 것이다. 한 해 피의자 35만여명 중 40%가 야간 또는 새벽에 법원 심문을 받는다. 

야간 재판이 열리면 재판부당 대략 7~8명의 일손이 더 필요하다. 안산의 법원노조도 처음엔 이견이 있었지만, 서민들을 위한 재판의 활성화라는 취지에 공감해 시간외 수당과 다음날 오전 근무 제외라는 선에서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민들의 작은 불편이라도 해소해 주려는 모습이 반갑다. 

오후 6시면 칼같이 문을 닫던 ‘군림하는 행정’은 옛말이다. 저녁 시간은 물론 주5일 근무시대에 맞춰 토·일요일에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청들도 잇따르는 추세다. 사법도 대국민 서비스의 일종이다. 안산지원의 사례가 전국의 다른 법원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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