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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서울지검 특수2부, 그 후 1996년 3월 서울지검 특수2부가 있는 11층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국내 1군 소속 건설사 전체를 상대로 한 공사 입찰 담합비리 수사였다. 현대·대림·대우·동아·삼부·풍림·삼호 등 굴지의 건설사 대표들이 검사실 철제 의자에 앉아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보기엔 ‘담합’ 비리였지만 업계 입장에선 수십년 이어진 ‘조정’ 관행이었다. 70~80년대에는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업자들을 불러 모아 대형공사를 조정했다. 적게는 3%, 많게는 10%까지 리베이트를 상납하는 게 관행이었다. 이 돈은 대통령의 통치자금과 여당의 정치자금으로 쓰였다. 유신 시절 부정축재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떡을 만지다 보면 떡고물도 묻는 법”이라고 항변한, 바로 그 ‘떡’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가 조정은 사라졌지만 업자들간.. 더보기
[여적] 동네 이름 2004년 3월4일부터 이틀간 충북 충주시 살미면 설운동(雪云洞)에 때아닌 눈이 내려 21㎝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보기 드문 춘삼월 폭설이다. 같은 날 경북 봉화군 상운면 설매리(雪梅里)에도 25㎝의 폭설이 내렸다. 지명에 물 수(水)가 들어간 경기 파주시 문산읍(汶山邑)은 해마다 물폭탄이 쏟아지는 상습 홍수 지역이다. 1996, 98, 99년 여름 호우 때는 전국 피해액 중 이곳에서만 전체의 10%가 넘는 피해를 기록했을 정도다. 구리시 수택동(水澤洞)은 2001년 7월 집중 호우 당시 이름 그대로 동네가 연못처럼 변해 시 전체 피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소방방재청 산하 국립방재연구소가 지명이 자연재해와 일정 부분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는 보도다. 1912~1918년에 불렸던 옛 지명 .. 더보기
[경향의 눈] 한나라당이 꿈꾸는 법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OO부 나사법 판사는 서둘러 부장판사실로 갔다. 방에는 우배석 판사가 먼저 와 있었다. 흘낏 바라보는 부장판사의 시선이 따갑다. 말쑥한 양복 차림의 30대 남자가 부장판사에게 눈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국회 사법감시단 소속 직원이다. 2010년 초 몇몇 시국사건의 무죄판결 이후 ‘이런 법원을 그냥 놔둘 수 없다’며 입법부에서 만든 조직이다. 그 이후 주요 사건은 집권당과 판결을 사전협의토록 했다. 과거에 입었던 검은색 법복도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여당 요청에 따라 연청색으로 색깔이 바뀌었다. 오전 11시. 법정에 들어서자 썰렁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거의 모든 재판에서 검찰 구형이 그대로 반영되면서 기자들도 법정 발걸음을 끊은 지 오래다. 오늘 사건은 살인미수·폭발물 사용 .. 더보기